(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골프 연습장에 가면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대해주는 선배가 있다. 골프를 대하는 태도가 진심 어린 데다 나름 실력이 있어 주변분들을 가르치기도 하는 분이다.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지만 자신이 일 년 선배임을 유난히 강조해서 만날 때마다 선배님으로 깍듯이 대하곤 했다.
며칠 전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변고와 평소 자신의 신체적 우월성을 뽐내던 분인지라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아 가짜뉴스 아니냐고 반문을 했다. 상을 잘 치렀다는 고인의 딸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말없음으로 조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선배님 중 한 분은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고 하신다. 죽거든 바로 화장해 달라고, 식은 하지 말라고 자신의 바람을 자식들에게 미리 유언처럼 얘기해 놓셨다고 한다. 또 다른 분은 자신의 장례식을 본인이 직접 치르겠다고 하신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직접 전하고, 그들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단다. " 몇 명이 될지 모르지만 `나의 장례식`을 내가 치름으로, 내 삶에 동참해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건배를 제안하고 `함께해 줘서 행복했다` "고 말하면서 인생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셨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월계관을 쓴 장수가 제단에 올라 제를 지내고 내려오면 사제는 " 전쟁에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하고 귀에 속삭인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해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나타나 술에 취한 사람에게 " 메멘토 모리"라고 말하고 지나간다.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항상 곁에 있으니 겸손하게 살라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울리는 로마식의 경종이다.
어젯밤 한때 술친구였던 지인의 부음이 날아왔다. 발신번호는 지인의 것이지만 고(故)가 붙은 그의 이름은 낯설었다. 또 한 번의 황망함이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먼저 세상을 떠난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회신한다고 답이 올 리 없는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한다. 그 번호마저 지운다면 인연이 사라질까 두려워서이다. 그래서 저장된 채 쌓여가는 번호가 점점 많아진다.
지인의 부고가 삼자나 대리인의 명의로 날아온 통고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마감한다는 통보를 그렇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름으로 부음을 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오면서 나누었을 감정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로마 사람들은 가장 기쁜 날이나 환희에 젖어 있을 때도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삶이 계속된다고 일깨워 주려고 `메멘토 모리`를 외쳤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은 마주해야 하고 되돌릴 수 없음으로 겸손하라고 일러준다. 나의 부고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런 단어나 양식도 떠오르진 않는다. 단지 지금은 죽음을 곁에 두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일인칭의 부고장이 써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