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들의 밥상에 대하여

by 미현

음식에 관련된 글을 쓸려고 보니 자연스레 나오게 될 자전적 얘기들. 꾹꾹 누르며 써야 할지 아니면 작정을 하고 써야 하는 건지. 한참의 망설임 끝에 한껏 소심한 자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기억의 오류, 선택적 기억

성장 과정 중 특히나 유년의 기억 속에 자는 부재중이다. 행복한 단상이나 추억이란 게 없어선지, 억울하고 서럽기까지 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늘 회피해서 인지, 또 어쩌다 정면으로 마주할 기억의 진실이 두려워서 인지, 어느 날 보니 유년의 기억이 검은 우물 속처럼 보이지도 생각이 나지도 않는 거였다. 힘껏 두레박질해서 올라오는 건 잡히지 않는 오류난 기억들 뿐이다. 무슨 조화 속인지 자고 일어나니 훌쩍 커 버린, 그 시절 자는 실존 인물이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우린 뭘 먹고 자랐을까?''
자의 언니가 무심코 던진 의문의 말은 머릿속을 마구 휘졌다가 또 가끔은 멍하게 만들었다.
한 시대 한 공간 같은 밥상 앞에 있었던 우리는 유년의 기억을 통으로 날려 버린 것만 같다. 아프고 아픈 가난한 자들의 온기 없는 초라한 밥상만이 떠오르는다는 건 지나친 망상인가 허구인가.
우리 집 밥상에 뭐가 있었는지 우리는 뭘 먹고 성장할 수 있었을까.
톡 하고 건들면 주르륵 눈물이 흐를 것 같고, 아픈 심장은 두근두근 방망이질을 해되고, 무겁고 어두웠던 침묵의 밥상머리에서 무엇을 어떤 음식을 떠올릴 수 있을까.

가마솥밥과 상추

매번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던 작은 가마솥 하얀 밥. 뿌연 밥물은 보글보글 끓어 넘치다가, 꾸역꾸역 미친 듯이 거품을 뿜어 내다가, 어느 순간 쫙 밥알 속으로 스며들면서 쌀 본연의 찐뜩한 밥 내를 풍겼다. 밥알들은 매끈하고 기름진 투명함을 지니지 못했다. 설렁설렁 주걱으로 밥공기 그득 받아 밥상으로 가지고 가는 짧은 순간, 손에 전해지고 코로 전해지던 온기가 좋았다.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도 입안에선 차갑고 거칠게 느껴지던 밥알들은 꼭꼭 씹으면 꽤 괜찮은 단맛이 나서 아프고 슬픈 마음을 감싸 주었다.
뜨끈한 하얀 밥과 함께 그득하게 올라오던 상추는 매번 현실감 없는 조화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 초록 엽상체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텃밭 가득 심어져 있던 뜯어도 뜯어도 계속 불어나 있는 화수분 같던 상추만 보면, 신기하다 이상하고 슬프다가 화가 났다. 종일의 노동 속에서도 모는 짭짭 히 텃밭이라는, 하등 쓸모도 없다는 부의 타박과 공격을 피해 잘도 스며들었다. 숨을 차분히 고르고 순한 초식동물처럼 웅끄리고 엉덩이가 땅에 닿을 만큼 쪼그려 앉아 흙을 고르고 잡초를 뽑았다. 가끔은 멍하니 정지의 순간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는 등은 갑자기 공벌레 몸처럼 돌돌 말려져, 상추밭으로 데구루루 굴러 온통 초록잎즙을 온몸에 뒤집어쓰고는, 시야에서 없어지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흔들고 눈을 감았다 뜨면 모는 풍성하게 오른 상추 잎사귀를 욕심부리며 뜯고 있었다. '아 오늘도 모는 떠나지 않았구나 ' 놀란 눈을 내리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의 부재는 어린 자에겐 최악의 시나리오였으므로, 학교서 돌아와 모 부터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넘치도록 품 안에 품은 상추를 땅에 내팽개치고, 초초하고 불안정한 어린 자를 한 번만 품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투박한 손으로 머리 한번 쓸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무슨 상추를 그렇게 많이 땄어'' 하며 한껏 서러운 맘이 모나게 나왔다.
부의 타박이 극에 달하는 날이면, 모는 상추를 참 많이도 겹쳐 따뜻한 밥을 올리고 무심히 된장을 바르고, 야무지고 단단하게 목이 메도록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어떻게 작은 입으로 그 큰 쌈이 들어 가는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설움과 눈물처럼, 입 밖으로 나오는 상추 잎들은 다시 투박한 검지 손가락에 의해 더 깊숙이 구겨져 들어갔다. 상추쌈을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먹는 대회가 있다면 아마 모는 단연코 일등을 했을 것이다. 모든 불합리와 부조리를 인내하고 참아내는 모습이 사실 못 견디게 미치게 했다. 부재가 두려운 마음 뒤엔 모든 걸 내던지고 떠나 버리던지 자를 데리고 떠나 버리던지, 행복이란 걸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처절해 버리던지, 어린 자는 미묘하고 복잡한 심정이 되어 버렸다.
''상추가 그렇게 맛있어? 그렇게 먹고 있으니 소 같아 죽으면 제사상에 상추 올려줄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하는데도 모는 작고 희미하게 웃었다. 내뱉은 말들은 다시 부메랑 되어 돌아와 가슴을 아프게 쳤다. 서럽디 서러워 목 안 가득 황급히 밥과 상추를 구겨 넣고, 뒷동산에 있는 묘비 없는 봉분 위에 벌러덩 누워 채, 음식을 채 넘기지 못한 입을 틀어막고 끝내 알 수 없는 서러움을 토해냈다.
'나 좀 제발 데려가' 죽은 자에게 몸을 맡기고 눈 감으면, 무덤가 까칠한 짧은 풀들이 무성히 자라 온몸을 감싸서 어둠고 차가운 무덤 속으로 끌어당기는 섬뜩한 느낌에 순간 놀라서 허위적 대며 데굴데굴 굴러 뒤도 안 보고 동산을 헐레벌떡 내려왔다.
'어린것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죽고 싶지 않는데 실컷 객기를 부리고 달아나는 꼴이 가관이구만 한 번만 더 그럼 네 소원 대로 데러 가 주마' 죽은 자는 실성한 듯 도망가는 등에 대고 한껏 비웃었다. 그 후로 봉분 위에 눕는다던가 하는 짓은 절대로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고, 이상하게 모처럼 상추쌈을 잘 먹게 되었다.

기억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보자

지금의 모는 예전처럼 입이 찢어질 정도로 상추쌈을 먹지 않는다. 왜 먹지 않냐니 그때 맛이 아니란다. 모는 상추쌈에 울분과 슬픔을 얹어 다 삼켰다. 어린 자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지는 않았으나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고 곁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생각해 보니 운명에 기댄 채 한없이 나약하고 순종만 했다는 건 순전히 자의 기억의 오류다. 누구보다 주어진 운명과 제대로 뒹굴며 맞서 싸울 만큼 강한 모였다. 삼시세끼 따뜻한 밥에 집착하며 먹이기 위해 고군분투 했으며, 텃밭에서 산과 들에서 자란 싱싱한 채소들과 각종 풀들을 끊임없이 밥상에 올렸다. 남은 것들은 햇빛과 바람에 말려져 또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오르곤 했다. 어린 눈엔 초록 생것과 마찬가지로 다 한 가지 풀 대기뿐이라고 모를 서운케 했다.
모의 식습을 닮아서 인지 이유 없는 격정의 감정을 어찌할 수 없을 때면, 상추쌈이 아니더라도 입안 가득 음식을 그득 넣고 오물거리면, 한껏 지나치게 치솟아 있던 감정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
모의 희생은 가난한 밥상에 매번 음식들과 올려져 우리를 단단하게 성장시켰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구성원들을 흩어지지 않게 했으며, 밥이든 눈물이든 슬픔이든 삼키고 삼키며 지리멸렬한 삶들을 함께 했다. 자의든 타의든 상처 받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러하지 못한 것 또한 진실이다. 각종 사소하고 깊은 상처들은 있으나 조금씩 꺼내 다독이며 치유하며 살 수 있게 해 준건 모의 덕인 것 또한 진실이다. 누구의 탓을 하며 스스로의 기억들을 지우고 잘못된 기억의 선택은 오랫동안 우물 속에 스스로를 감금했다. 기억의 진실에 회피와 도피는 할 만큼 했으니 용기 내어 올린 두레박에 담긴 기억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새로운 구성원들의 밥상에 온기를 더하다.

여전히 모의 텃밭은 초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야채가게 하나쯤은 차릴 수 있을 만큼 더 다양하고 풍성해졌다. 집에 오는 이에게 밥 먹어냐는 말을 자주 하며, 텃밭의 결과물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성격에 모는 인간성 좋은 사람으로 평판이 좋다. 또한 삼시세끼 따뜻한 밥상을 대하면서도 좋은 말 한번 하는 적 없는 대단한 부에게 여전히 정성이다. 부는 모가 생산한 각종 무공해 텃밭의 음식들과 따뜻한 밥을 드셔 여전히 목소리가 크다. 두 분 모두 노후는 결코 비루하지 않으며 살던 대로 흙에서 주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검소하게 잘 살고 계시다.
자는 이제 새로운 밥상의 주인이 되었다. 모의 세상과는 다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삼시 세 끼에 동동거리며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느새 모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자의 밥상은 특별하고 맛난 음식 보다 밥상머리에서 늘 있었던, 따뜻한 온기와 웃음을 기억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상처 받은 마음 그 온기로 매 순간 치유하며 온전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각고의 노력을 하며 사는 것을 또 하나의 가치 있는 소명으로 삼고 있다.

어느새 뚜껑 안 밥물은 보글보글 거품을 내고 있다. 참 신기하네 끓어 넘치지 않는 가마솥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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