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꽃이 어찌나 하애야지라
한 번도 못 갔서라
옆집 새참 심바람 광주릴 머리에 이고 철둑을 건너가는디요. 질경이꽃이 어찌나 하애야지라. 머리 밑, 또아리를 풀어서 새참 광주릴 덮어놓고는 그 길로 철둑길 따라와서는 한번도 못 갔서라.
신경숙 님의 '그 女子의 이미지' 중에서
처음 먼길을 떠났던 확실하지 않은 기억을 소환해 본다.
동네 뒷산이었을까, 아님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눈에 보이는 어느 산이었을까? 그날 아이들은 무엇에 마음이 동해서 그 먼길을 걸어 그 산에 갔을까. 신바람이 난 발들은 뒤도 안 보고 냅다 경쟁하듯 뛰어 금방 가파른 달동네를 벗어났다. 언덕 아래 낯익은 학교를 지나고, 복잡한 차도를 지나고, 금방 모든 풍경들이 낯설어졌다. 그 낯섦에 묘한 짜릿함까지 더해져 머릿속이 혼미해지고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다. 재잘거리는 동무들과 서로 몸을 부딪혀 가며 앞서거니 또 뒤처지다가를 수없이 반복했다. 무수한 미로 같은 길을 지나니 정말 거대한 산이 눈 앞에 서 있었다. 산에 도착해 한참을 떠들썩하게 올라갔다. 꽃, 풀, 나무, 흙냄새가 초록, 연둣빛, 산 색이 그리고 적당히 불어 시원했던 바람이, 나뭇잎 사이로 쨍하고 비추던 햇살이 기억되는 걸 보면 아마 계절은 '입하' 그쯤이었을 것이다. 나뭇가지를 주워 막대 싸움도 하고 아카시아 줄기를 제일 큰 걸로 골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잎을 따기도 하며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귀여운 다람쥐라도 본 것일까 아님 예쁜 꽃을 발견이라도 한 것일까. 어디에 정신을 뺏긴 것인지 같이 간 동무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이미 높은 산 바위 위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거였다. 꼼짝없이 고립되어 아득히 아찔한 시커먼 산 아래를 쳐다보니 저절로 울음이 났다. '더 크게 울어보자 그럼 누가 와 주겠지.' 되돌아오는 건 서러운 내 슬픈 울음 메아리일 뿐. 울음을 잠시 멈췄을 땐 어찌나 고요하고 적막하던지 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음을 반복하다 보니 자동 눈물이 멈췄다. 일생일대 이 난관을 어째 해야 하나. 하늘을 쳐다보며 무사히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알지 못하는 존재에게 빌고 또 빌었다. 무슨 능력을 주신 것일까. 눈물을 옷자락으로 모질게 닦고 손가락 발가락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 바위에 착착 붙어 어찌어찌 바위를 타고 산을 내려왔다. 평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침을 퉤퉤 뱉고 산을 올려 보며 잘못 없는 산을 노려봤다. 갑자기 산의 전령들이 괘씸하다며 도로 바위 위에 올려놓을까 봐 등을 휙 돌려 후다닥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 동무들과 왔던 길을 혼자 가자니 어찌 이리 또 멀게만 느껴지던지. 다리는 한없이 꺾이고 눈꺼풀은 또 얼마나 무겁던지. 알 수 없는 타 동네의 길들을 헤매고 걸어 동네에 도착했을 때 마음 한쪽이 푹 하고 꺼지듯 한숨이 나왔다. 어이없고 서러운 맘 터덜터덜 거지꼴 되어 동네길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 갈수록 난 어디를 갔다 온 건지 꿈을 꾸었나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더군다나 같이 간 동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맑고 행복한 얼굴로 놀면서 불쌍한 패잔병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거였다. '다시는 너네랑 안 놀 거야' 참혹함과 배신감에 몸서리치며 남아 있는 힘 모아 패악을 부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처참한 심정 알길 없는 언니는 하루 종일 코빼기 보이지 않은, 해 질 녘 꼬질한 모습으로 나타나니 , 엄한 얼굴로 다짜고짜 손 들고 서있으란다. 우찌 나에게 이러나 싶어 씩씩거리며 방으로 들가 벽을 보고서 두 손을 보란 듯이 번쩍 들었다. 이상하게 방에 들어오니 살아 있는 것이 실감이 났다. 복잡한 심정이 되어 울지 않겠다는 마음은 와르르 무너져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괜히 벌을 세웠나 모질지 못한 언니는 '됐으니까 그만 내려 엄마 아빠 오실 때 됐어'라고 말했지만, 고집불통이는 손을 내리지도 않고 꺼이꺼이 동네가 떠들썩하게 울어 제겨 등짝 한 대까지 맞는 수모까지 겪고서야 하루 동안 일어난 일에 마침표를 찍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바위 위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꿈을 꾼다. 가끔은 만화 주인공처럼 한 번의 점프로 지상에 멋지게 착지하는 여전사가 되기도 한다. 첫 번째 서울살이 동네를 꼭 가보고 싶었던 건 이 사건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였다. 해군본부 뒤 달동네 신길동은 싹 다 없어지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가까운 곳엔 그 어디에도 산은 없었다. 고개를 들어 보이는 산은 너무도 멀리 보였다. 그렇다면 저 산들 중에 한 산을 갔었단 말인가. 어린 계집애는 어쩌자고 그 먼 산을 갔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참으로 생각할수록 미스터리다. 상상이 지나쳐 하나의 실체 없는 사건을 만든 것인지. 그렇다고 하기엔 생생한 경험은 뭘까. 이 알길 없는 진실 넘어의 실체에 가끔은 멍해질 때가 있다.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데 다행히도 낯선 길, 동네, 산을 좋아한다. 역마살이 확실히 있긴 한데, 현재까지는 떠나온 길을 적당한 시기에 망설임 없이 되돌아올 줄 안다. 가끔은 너무 멀리 가버려 돌아올 때 만신창이 된 적은 많았어도 주변인들을 크게 놀라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눈부신 하얀 질경이 꽃 때문에 살 비비고 살아온 남편을 두고 철길 따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글귀를 읽을 때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두려워진다. 너무 먼길을 끝없이 가다 길 잃고 돌아 오지 못 할까 봐. 돌아왔는데 익숙한 길도 집도 풍경도 다 없어지고 사람들마저 온 간데 없이 사라졌을까 봐. 내게 있어 일상으로의 먼길 떠남은 분명 회귀본능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되돌아올 수 없는 떠남을 계획하지도 지향하지도 않는다. 떠나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떠나고, 돌아오고 싶을 때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내려놓고 올 수 있다면 다시 돌아온 일상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살아가면서 꿈꾸는 지향하는 내 삶의 딱 맞는 소명의 그릇이며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날 눈부시게 하얀 질경이 꽃을 보았던 것일까.
다행히 어린 계집애는 돌아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