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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돌 Apr 17. 2024

버거킹 와퍼 단종과 양치기 소년, 그리고 치맥 세트

마케팅에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

 "얼른 와서 이것 좀 봐!"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내에게 달려갔다.


 아내가 손을 떨며(실제로 떤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 보였던) 건넨 휴대폰 화면에는 믿을 수 없는 문구가 떠 있었다.


 40년 동안 우리 곁을 지켜 온 와퍼 판매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버거킹 와퍼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24년 4월 14일부로 버거킹 와퍼 판매를 종료한다는 긴급 공지였다. 버거킹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올린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분명 만우절은 지난 주였는데. 믿을 수 없어서 뉴스 기사를 검색했다. 정말 와퍼가 단종된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주르륵 떴다.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와퍼 없는 버거킹은 빅맥 없는 맥도널드, 오리지널 간장 치킨 없는 교촌치킨, 글레이즈드가 없는 크리스피 도넛, 김밥이 없는 김밥천국 같은 꼴 아닌가.


 아내도 나도 햄버거를 좋아한다. 연애할 때는 지금은 없어진 체인점인 크라제 버거를 즐겨 갔고, 아내의 집 근처에 자리했던 이태원 스모키 살룬도 좋아했다. 지금 사는 동네 인근인 연남동의 다운타우너, 홍대의 더리얼치즈버거 같은 햄버거집들은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국에 쉑쉑과 파이브가이즈가 들어왔을 때도 둘째로 가면 서러울세라 바삐 달려갔더랬다. SNS에 뜨는 서울 버거 맛집 베스트 10이니 5니 하는 곳들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런 수제 버거도 좋아하지만 프랜차이즈인 버거킹도 좋아라 하는 우리였다. 아내는 소위 '불맛'을 선호하는 입맛이다. 그래서 맥도널드도 맘스터치도 KFC도 롯데리아도 아니라 오로지 버거킹을 고집했다. 와퍼 때문이었다. 1954년부터 직화 방식으로 패티를 구워 만든 버거킹 대표 메뉴인 와퍼. 당시 햄버거 프랜차이즈들은 대부분 팬에다 패티를 굽는 방식으로 조리했는데 버거킹은 특유의 불맛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한다. 아내 역시 그 맛을 좋아했던 거고.


 엄마 아빠의 입맛을 닮아서일까. 아이도 버거킹에 가는 걸 좋아한다. 엊그제도 동네 버거킹에 들러 와퍼주니어와 감자튀김과 미닛메이드 오렌지 주스를 먹고 마셨다. 먹고 나서 입에 묻은 케첩을 쓱 닦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이였다. 햄버거 같이 몸에 안 좋은 걸 먹이면 안 돼, 라는 부모들도 있지만 뭐든지 간에 맛있게 잘 먹으면 좋은 거라 생각한다. 다만 버거에서 양상추만 하나하나 골라내지 않으면 더 좋을 텐데.


 놀란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이제 괜찮아졌다는 듯이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나는 사실 와퍼보다는 콰트로치즈버거를 더 좋아해."


 아내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나를 흘겨봤다.


 "그것도 와퍼의 한 종류야."


 며칠 후. 와퍼의 판매 종료라기보다는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대표 메뉴인 와퍼가 단종될 리는 없다. 리뉴얼해서 가격을 올리거나, 가격은 유지하되 패티의 중량을 줄이거나 번을 바꾸는 전략일 거라고. 회사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강수일 거라는 분석 기사였다. 아아, 그렇구나. 단종이 아니라 '와퍼 시즌 2' 론칭을 위한 이벤트였구나.


 실제로 15일부터 '뉴 와퍼' 판매가 시작됐다. 이름도 예전과 똑같이 와퍼이고, 소금과 후추 시즈닝을 더하고 이름이 복잡한 무슨무슨 기술을 활용해서 불맛이 강조됐단다. 버거킹에서는 달라진 점을 더 알리고 싶은 마음에 와퍼 판매를 종료하겠다고 고지한 거라고, 소비자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왠지 안심하면서도 화가 났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낚으면 쓰나. 동시에 몇 해 전 오사카 여행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2017년 12월. 연말이라 그런지 인천공항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기나긴 입국수속 줄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이 끝난 뒤엔 온몸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달려서 간신히 시간 안에 오사카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좌석에 앉아서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30분. 이미 출발 시각이었다.


 그런데 왜 출발을 안 하지. 8시가 지나고 8시 반이 되었는데도 비행기가 뜨질 않는다. 기다려달라는 안내 방송만 수 차례. 휴대폰의 비행기모드를 풀고 검색해 보니 인천공항이 난리랜다. 갑자기 들이닥친 역대급 해무 때문에 비행기들이 죄다 이착륙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기장과 승무원들이 연신 죄송하다며 승객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다들 새벽 일찍 나오느라 아침도 못 먹었을 터. 성난 사람들에게는 곡물 스틱 과자가 하나씩 배급됐다. 이 따위로 배가 찰 리가 없었다.


 결국 10시 반쯤 되니 기내식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행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는 건 처음이다. 비행기가 언제 뜰 지 모르니 진짜 밥을 드리기는 어렵고 대신에 치맥 세트를 드리겠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람들은 나남 할 것 없이 "와아!" 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조금 늦더라도 치킨 정도면 괜찮지. 하지만 이게 웬걸. 이내 나온 건 '닭다리' 스낵 과자에 캔맥주 하나였다. 이게 치맥 세트라고? 모두가 허탈해했다. 욕지거릴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 아내는 그날 이후 저가항공사인 ㅈ 항공을 타지 않는다. 승객을 놀려먹는 회사라서 싫다고.


 사람을 속이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하지만 나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13일에 올드 와퍼를 먹었고 '어떨까' 하는 마음에 조만간 뉴 와퍼를 먹으러 갈 예정이다. 한낱 마케팅에 휘둘리는 소비자 A였을 뿐이었나...)




믿기지는 않지만 혹시나 해서 어제 버거킹에 들러 와퍼를 먹었다



충격적이었던 ㅈ 항공사의 치맥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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