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란×베이컨 오일 파스타

(1) 영화 '시월애'의 이정재를 떠올리면서

by 김돌

매번 아내에게 밥을 얻어먹을 수만은 없다. 나도 어렸을 때 '꼬마 요리사' 노희지를 보면서 곧잘 요리를 따라하던 셰프 꿈나무 아니었던가. 마침 아내가 주말 근무로 인해 피곤에 절어 있으니 이제야말로 내가 나설 때다. 숨겨왔던 나의 실력을 한껏 뽐낼 때가 왔다. 히어로는 꼭 죄다 터지고 누군가 죽고 엉망진창 난리가 난 이후에야 나타나더니만 딱 그 꼴인가 싶기도 하다. 근데 내가 감히 뭐라고 히어로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걸까. 오만에 가득 차 있는 자의 요리가 과연 맛있을 것인가.


뭐든지 메뉴를 얘기해 보라는 말에 아내가 오일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평생 그런 걸 만들어 본 적 없는데 내가 과연 그런 걸 만들 수 있을까. 밥 로스 아저씨처럼 "참 쉽죠?"라며 아내가 요래조래 원포인트 특강을 해 줬다. 그래... 뭐;; 얘길 들어보니 그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집에 조개나 바지락이 없는지라 일단 마늘과 명란, 베이컨으로 만들게 된 알리오 올리오. 요리왕을 향한 대장정에서 마주친 첫번째 과제다.



자 이제 시작이다. 빠진 재료가 없나 마지막으로 점검을 해 본다.





삶을 때 끄트머리를 불에 태우지 말고 끓는 물 속으로 잘 넣어야 돼. 목욕탕에 가면 열탕에 들어가길 싫어하는 꼬마애들이 다리만 살짝 담그고 있는 광경을 종종 본다. 걔들 옆엔 분명히 뜨거울텐데 "으허ㅡ 시원하다"면서 꼬마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는 아빠들이 꼭 있다. 싫다는데도 꼭 아이들을 뜨거운 탕 속으로 집어당기는, 그런 아빠가 된 심정으로 면을 살살 휘저으면서 끓는 물에 넣어본다. 들어가, 들어가라고 쫌. 하나도 안 뜨겁다니까, 되게 말 안 듣네 진짜 쫌. 우여곡절 끝에 모든 면발을 물에 푹 잠기게 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물에 기름을 몇 방울 뿌려두면 면발이 서로 엉겨붙지 않는댄다. 진작에 알려줬어야지. 원래 소금도 넣어야 된다는데 명란이 짜니까 굳이 또 넣진 않았다.





면을 삶는동안 다른 재료 준비. 통마늘을 적당히 썰고 냉동실에 넣어둔 명란을 해동하고 베이컨을 꺼냈다. 근데 저 많은 베이컨을 진짜 다 먹을 수 있나. 한 팩을 통째로 다 쓰는 게 맞는건가. 하지만 걱정말자. 시방 우리는 굶주린 두 마리 하이에나니껜. 이깟 거 다 먹어부러 그냥. 고기는 다다익선 아닙니까.





면이 다 익었나 모르겠다. 분명 눈으로 봤을 땐 다 익은 것 같은디 알 수가 없네. 갑자기 영화 '시월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서 이정재가 혼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데 면이 익었는지 확인하려고 벽에다 던지는 모습이 나온다. 던진 면발이 벽에 찰싹 하고 잘 달라 붙으면 그게 바로 잘 익은 증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미래에 사는 전지현한테 편지로 설명해준다. 나도 그래서, 얼굴은 이정재가 아니지만 여하튼 멋진 표정을 지으면서, "이보게 관상가 양반 내가 (요리)왕이 될 상인가" 성대모사도 해 보면서, 아내 몰래 면을 벽에다 집어던져 봤다. 아주 자알 붙네그려. 아내에게 야단 들을까봐 슬쩍 눈치를 보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면발을 떼어내고 벽을 닦아냈다. 후훗, 아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니 완전 범죄다.





다 익었으니 일단 파스타면을 체에다 덜어두고.





나머지 재료들을 기름에 볶는다. 이 때 올리브 오일이 아주 중요하지, 오일 파스타니까. 올리브를 쓰면 왠지 이탈리아의 풍미가 느껴지지 않을까, 라고 기대했는데 우리집에 있는 올리브 오일은 스페인산이다. 아니, 그런데 이걸 언제 다 쓴거여, 턱도 없이 양이 모자란다. 결국 식용유가 대타로 나섰다. 마늘과 베이컨, 그리고 오일의 환상 조합. 뜨거운 불 위에서 이 환상의 드림팀을 살살 조련해 본다. 이렇게 기름에 볶아대면 굳이 면이 없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겠는데.





잠깐. 뭔가 이상하다. 저 베이컨 너무 크잖아. 원시인처럼 베이컨을 손으로 들고 입으로 찢어먹을 뻔 했다. 나는야 호모 에렉투스의 후예라는 걸 증명하듯 가위로 잘 잘라줬다.





어휴, 기름 엄청 튀네. 뚜껑을 덮어서 잠시 격리수용 하겠습니다.





이제 아까 삶아놓은 면과 합방하겠습니다. 두근두근. 신랑이 신부 얼굴을 모른대요 글쎄. 아, 신부도 마찬가지라던데. 쑥덕쑥덕, 남의 신방 구경하는 짓궂은 이웃 주민이 된 기분으로 조심스레 합방 작업을 완료하려는데...





난 이 결혼 반댈세! 뜨거운(?) 합방식 와중에 갑자기 명란이 들이닥쳤다. 아내가 명란을 제일 마지막에 넣으라고 해서 오랜 기다림에 지쳐있던 그 명란이다. 둘이서 알콩달콩 데이트하는 커플 사이에 눈치없게 같이 놀자면서 끼어드는 밉상 친구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명란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맛은 더 좋아질 게 분명하다. 하나보단 둘, 둘보단 셋, 셋은 역시 씨비 매쓰! 머라는 거야 대체.





기름이 모자라다. 급하게 식용유를 더 투입했다. 사진이 흔들린 걸 보니 급박함이 느껴진다.





잘 섞어주긴 했는데 간이 좀 심심하네. 이럴 땐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향신료가 있다. 바질을 바질바질 후추를 후춧후춧. 이런 멋진 표현을 만들었던 웹툰 야매요리에게 감사의 말씀 전한다. 근데 정다정 작가님 후속작은 대체 언제 나오나.





그럭저럭 비주얼은 그럴싸한데 면이 어째 촉촉하지가 않고 튀김같이 바삭바삭한 느낌이 든다. 기름이 모자라서 그런가. 까딱하면 튀긴 라면땅 될 뻔. 하지만 파스타건 튀김이건 밀가루니까 맛없을 리 없다. 글루텐 프리 따위 개나 줘버려.





어찌됐던간에 드디어 완성! 세팅하니까 보기엔 좋다. 미안하지만 메인 요리에만 오롯이 관심을 집중하다보니 반찬이 없다. 피클이 없는데 단무지로는 어케 안되겠니.





아 참, 후식은 꿀에 버무린 산딸기로 마무으리.





물론 이번이 처음 도전한 요리는 아니다. 이런저런 요리를 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집밥 요리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 길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런지. 나도 (지금으로 봐선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이지만) 요리왕이 되어보자. 언제가 될 진 모르겠다만.



첫번째 요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