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아내가 장염 증세로 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다. 그동안 우리가 맛난 거 타령만 하면서 너무 바깥 음식만 먹어서 그랬나보다. 술과 고기, 짜고 매운 자극적인 향신료의 요리들을 신나게 먹어제끼던 참이었다. 아내가 퇴원하고 나서 함께 매일같이 죽을 먹으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프기 전에 관리하는 1류가 되지 못하고, 아프고 나서야 관리하게 되는 우리는 2류. 하지만 아프고 나서도 몸관리는 뒷전인 3류보다는 낫겠지.
장이며 위에 좋다는 블루베리며 매실 엑기스, 양배추즙도 냉장고에 그득그득 채워놓고, 회사 선배님을 통해 직접 키우셨다는 작두콩도 조금 얻어왔다. 이게 염증에 그렇게 좋다더라. K 센터장님, 감사합니다.
작두콩이라는 게 참 희한하게 생겼다. 푹 끓여서 둥굴레도 같이 넣고 고소하게 차로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이제는 죽을 끊고 슬슬 밥을 먹어야지. 속에 부담스럽지 않을만한 게 뭐가 있나 고민하다가, 가볍게 미역국을 끓여보기로 했다. 국만 있으면 섭섭하니까 연어도 한 마리 구워보자. 다행히 냉동실에 국거리용 소고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하마터면 미역만 들어있는(미역 순수령?) 허여멀건한 해초 국을 먹을 뻔 했다. 미역은 아주 아-주 아---주 조금만 뜯어서 물에 불렸다. 이게 마치 신입사원이 매일같이 계속되는 회식 술자리 때문에 배 둘레가 늘어나듯이 눈 깜짝할 새 무럭무럭 불어나 버리더라. 지난번에 그걸 모르고 미역을 왕창 넣었다가 대가족이 다 들러붙어도 못 먹을만큼 어마무시한 양의 미역국이 탄생하는 참사를 겪은 바 있다. 낸들 그렇게 불어날 줄 알았나 뭐. 아내에게 등짝을 안 맞은 게 다행이었다.
한 10분 정도 미역을 물에 불린 뒤 물기를 짜내고 해동시킨 소고기와 잘 섞었다. 후추와 소금을 뿌려서 밑간도 했다.
그리고 약한 불에 살살 볶았다. 원래 들기름을 넣으라던데 냉장고의 어디에 처박아뒀는지 몰라서 그냥 참기름을 써서 볶기 시작했다. 고기에 기름과 후추를 넣은 채 볶으니 맛있는 냄새가 폴폴 난다. 냄새가 좋지 않을 수 없는 조합이지. 그럼 혹시나 요리를 망치기 전에 여기에서 그만둘까. 사실 미역국을 하려던 게 아니라 미역소고기볶음이라는 퓨전 요리를 하려고 했다 우기면 되잖아. 괜히 물을 부었다가 망쳐버리면 어떡하지. 파국을 알면서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불륜 드라마의 출연진이 된 기분이다. 나를 기어코 패배시키려는 세계와 끝끝내 대립하는 자아, 그 위대한 투쟁, 게오르그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말했던 그런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고작 소고기 미역국 하나 끓이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한다.
그래도 완성은 해봐야지.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법. 적당한(요리 초보들에게 있어서 아주 위험한 단어인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끓인다. 그러고보니 계량 따위 하지 않고 감으로만 요리를 하고있다. 이게 초보들이 하는 흔한 실수라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도 왕년에 꼬마 요리사 노희지를 따라하던 요리꿈나무였다. 난 나를 믿는다.
마지막엔 깊은 맛을 위한 다진마늘을 넣고서 미역국을 마무리하자. 한국 요리에 마늘이 들어가지 않으면 섭섭한 거 다들 아시죠? 간은 소금과 간장을 조금 넣어서 적당하게 맞췄다. 그러고보니 모든 과정이 '적당히'로 진행됐다. 참 어려운 말이다, 적당히, 적절히, 상당하게, 어느 정도, 뭐 이런 말들. 인생살이라는 게 계량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요리를 하면서 깨닫는다.
연어는 소금과 후추간을 한 뒤 자알 구웠다. 잘 굽기만 하면 되니까 어려울 거 없다. 냉동실에 있다가 나온 녀석이니까 살짝 해동을 한 뒤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뒤집어가며 익혀야 속까지 다 익는다. 막판에는 불을 세게 올려서 겉은 바삭하게. 나름의 굽기 비법이다. 다들 알고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거라고? 그럼 어쩔 수 없고... 괜히 쭈굴해지네.
드디어 한상 차림 완성.
아프지 맙시다 우리. 아프면 맛있는 밥도 못 먹게 돼. 먹어보니 맛은, 뭐,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다보니 요리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저 느낌같은 느낌이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지만 여튼 맛있었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