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버터구이

(3) 아르헨티나에서 바다 건너 온 아이들

by 김돌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주말 아침밥은 내가 해야지.


마침 지난번에 마트에서 사 온 자연산 붉은새우가 냉동실에 있다. 그럼 오늘 아침은 새우 버터구이다. 신난다, 이른 아침부터 술판을 벌여야 할 것 같은 요리다. 후추며 소금이며 레몬즙이며 이런저런 향신료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향신료가 요리와 문화 교류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는 그런 다큐를 봤던 적이 있다. 일찍이 나도 어릴 때 '대항해시대' 게임을 하면서 향신료의 소중함에 대해 익히 배운 바 있다. 이거이거 유럽 촌놈들, 후추며 육두구에 아주 환장하는구만 그러면서.





이마트에서 사 온 새우는 무려 아르헨티나에서 건너왔다. 몸통만 있고 머리가 없다. 새우의 토막사체를 보면서 왠지 모를 소름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그럼 머리는 아르헨티나에, 몸은 한국에 있는건가. 그렇다면 새우의 영혼은 뇌가 있는 머리에 있는건지, 심장이 있는 가슴에 있는건지, 사후 세계에 갈 때 어느 지역 소관일까 머리가 있는 아르헨티나일까 몸이 있는 한국일까 같은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해동을 했다.





소금물에 씻어야 새우 본연의 맛이 안 빠져나간다더라. 그렇다면 내 지갑도 소금에 절여놓으면 돈이 안 빠져나가려나. 그런데 요즘은 어차피 엘지페이 쓰니까 지갑에 현찰을 안 넣어 다니니 쓸모없는 짓이겠다.





새우는 껍질까는 게 힘들다. 이게 바로 새우의 문제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아내가 말했다.

"그냥 불에 먼저 익히고 먹을 때 까서 먹어."

싫어. 내가 대답했다.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미룰 수 있는 건 최대한 뒤로 미루는 사람이었는데 이상타. 왠지 부지런해진 듯. 결혼하고 나서 자의 반 타의 반 성실해졌다. 남자가 변하려면 군대가 아니라 장가를 가야 하나보다. 그런데 껍질을 까고 보니 양이 삼분의 일 정도가 날아간 것 같다. 새우 너 과대 광고 허위 포장으로 고소할거야.





소금, 후추, 레몬즙으로 밑간을 한다. 주물주물. 골고루 배어라 나의 손맛. 당연히 손은 깨끗이 씻었다. 간을 하다가 왠지 풍미가 더 좋아질 것 같아서 바질도 넣었다. 요리 초보들이 흔히들 하는 실수라더라. 맛있어 보이는 건 이것저것 죄다 넣어보는 거. 그러다가 결국 끔찍한 혼종을 낳게 되는거다. 요리할 땐 1+1이 항상 2가 되는 건 아니다. 어렸을 적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다는 건 아니다. 정말. 아니라니까. 그런데 나 어릴 때 잘 안 먹어서 되게 말랐었다. 여튼 새우에 바질을 넣은 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마늘도 볶아야지. 한국 사람은 역시 마늘이지 마늘. 파워 오브 마늘. 인터넷에 보니 슬라이스로 썰어야 한다는데 배가 너무 고프다. 걍 통마늘을 두어 번 써는 정도로만 끝내자. 시간을 너무 끌다간 생 새우를 그냥 씹어먹고 싶어질 지도 몰라. 요리는 배가 고플 때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배가 고프니까 배를 채우려고 요리를 하는 거잖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다. 고민 끝에 내린 답은... 내가 배가 고플 때 누군가가 대신 해 주는 요리를 먹는거다. 딩동댕. 그러니까 다들 밥 해주시는 엄마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올리브 오일을 팬에 두르고 버터도 한 조각 넣었다. 나름 제대로 각 잡고 요리를 할 땐 꼭 일반 식용유가 아닌 올리브유를 쓴다. 한낱 계란 후라이 같은 걸 할 땐 올리브유를 안 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있는 놈한테만 대접을 해 주면 그 놈만 더 잘나가게 되고, 결국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거다. 계란 후라이도 올리브유 위에 구우면 대단히 맛있는 일품 요리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가난한 자가 그런 기회를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새우와 계란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싶지만 그래서 언론에서 물고 뜯고 해도 기본소득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아직 지지하고 있다.


물론 이거 다 헛소리고 올리브유가 비싸서 아껴써야 하니까 그렇다. 나도 언젠가 부자가 돼서 계란 후라이 먹을 때도 올리브유를 팍팍 쓰고싶다. 물론 아내가 안 보는 사이에 몰래 팍팍 쓸 수도 있는데, 우리는 사랑과 신뢰로 함께하는 사이라서 그런 거짓된 행동을 할 수는 없다.





마늘이 적당히 익었다 싶을 때쯤 새우를 투입했다. 하나 둘 지글지글 끓는 기름 위로 뛰어든다. 15번 올빼미 도하! 이렇게 외치는 게 맞나 가물가물하다. 군대를 공익으로 가서 잘 모르것다. 여튼 내가 새우라면 무척 공포스러울 것 같다. 얼마나 뜨겁고 아플까.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그래서 살아있는 동물을 요리에 쓰면 안 된다는 법이 있다고 들었다. 새우를 볶으면서 평소에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지옥의 가마불에서 튀겨지지 않을 거라는, 일요일 오전의 교회도 아닌데 왠지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살아있는 새우도 아니었는데 뭔 소릴 하는거여.





드디어 완성. 캬아. 냄새 좋고 비주얼 좋고 맛도 좋구나. 새우에 버터에 마늘을 구웠는데 맛이 없기가 오히려 어렵겠지. 아무리 요리 고자라도. 새우만 먹기 아쉬워서 아보카도도 썰어서 같이 먹었다. 사진은 없다. 먹기 전에 분명 찍어 놨는데 배가 고파서 서두르다 보니 저장이 안 됐나보다. 그러고보면 예쁜 음식 사진들을 올리는 요리 블로거들은 대단히 참을성이 많은, 가마솥에 거미줄을 쳐도 공자왈 맹자왈 글을 읽는 선비에 가까운, 혹은 백일 간 쑥과 마늘만 먹고 살았던 웅녀와도 같은 분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쉬잇, 그분들을 무시해서는 안돼.





이렇게 오늘은 남편이 요리사, 요리왕을 향한 대장정의 한 걸음 끝. 아내가 내 요리실력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칭찬을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배가 불러서 춤을 출 순 없었다. 아침부터 술과 안주로 배를 너무 채웠네.



세번째 요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