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국과 고등어구이

(4) 간단해 보이는 게 가장 어려운 법

by 김돌

그동안 밥을 안 해먹었던 건 아닌데 귀찮아서 요리 과정을 기록해두질 않았다. 주말 아침이니만큼 오늘은 오랜만에 국을 끓이고 생선을 구워봤다. 그리고 사진도 찍어놨다. 그러고보면 요리 블로거들은 대단하다. 어떻게 배고픔과 귀찮음을 이겨내고 구도까지 잡아가며 예쁜 사진들을 찍는걸까. 여튼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 아니, 가정식 전문 요리이사아!



아침이니만큼 간단하게 만들어 보자. 모름지기 살림꾼이라면 냉장고를 잘 파먹어야지. 마침 냉장고에 고등어가 있길래 구워먹기로 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남편은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고드응어르을 꺼어내애고호~ 국을 무얼 끓여보울까아~ 잠깐만, 왜 혼자서 가락을 얹어 노래를 부르고 있지. 말할 때 음을 붙여서 중얼거리면 나이 먹은 거라던데 나도 벌써 아재가 된건가. 노화는 저에게 소리없이 성큼 다가 와 버렸군요. 작대기 손에 들고 지키고 서 있었는데도 늙음이라는 녀석이 몰래 와서 어느새 귀밑 머리가 희어졌다던 그런 옛 시조가 떠오른다.


국이 있어야 밥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한국 사람들은 밥만으로는 안 되고 뜨끈한 국물이 꼭 있어야 되더라. 해외 여행 가면 꼭 며칠도 안 돼서 라면 국물을 찾으며 몸서리치더라니까. 기브 미 더 국물 플리즈. 대체 왜 그럴까. 못 살았던 시절 고기 건더기를 물에다 우려내 다들 나눠 먹어야 해서 그런 거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양을 불려서 배를 채워야 하니까. 국물 찾는 식습관이 그때부터 생긴 거라고. 힘들었던 시절의 식습관이 이 나라 사람들의 유전자에 각인돼버린 듯 하다. 여튼 우리도 국을 꼭 먹어야만 하는 한국 사람들이라 매 끼니마다 무슨 국을 끓일지 고민한다. 아침이니까 자극적이지 않은 걸 먹자. 그럼 만만하게 계란국으로 가즈아. 계란국과 고등어구이 콜? 오케이 콜.





고등어는 무려 부산에서 넘어 온 귀한 몸이시다. 냉동실에 소중히 모셔놨던 거라 전자레인지에 해동 한 번 하고 약불에다 살살 굽기 시작했다. 고기든 생선이든 굽는 건 자신있다. 왜 자신있어 하는걸까.


이 자신감의 원천은 어디서부터인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예전에 요리를 너무 못해서 하는 것마다 간이 안 맞거나 생김새가 괴상하거나 이게 먹을 수 있는건지 아닌건지 따위로 고민할 때가 많았다. 아니, 요리만 엉망인 게 아니라 뒷정리하는 것도 귀찮아서 냄비에 곰팡이가 슬 때까지 설거지를 안 하기도 했다. 그 꼴을 보고 아내가 기겁을 하는거다. 뭘 만들지도 못해, 정리도 못해, 뭐라도 하나 잘하긴 해야 되는데... 그럼 제일 간단한 '굽기'라도 잘 해야지. 구이 요리에 집중한 게 그때부터였나보다. 그런데 굽기야말로 쉬워 보이면서도 무척 어려운 기술이다. 아차 하는 순간 시꺼멓게 타 버리고, 그렇다고 자꾸 뒤집으면 맛이 없고, 어떨 때는 덜 익어서 먹는 도중에 다시 팬 위로 돌려보낼 때도 있다. 세상만사 쉬운 일이라는 게 하나 없다.





다행히 두어 번만 뒤집어서 노릇노릇 잘 익혔다. 약불로 굽다가 마지막엔 센불에다 바싹 굽는 게 그동안의 경험에서 익힌 나름의 굽기 방법.





고등어가 구워지는 동안 계란국을 끓여놓자. 계란국에는 당연히 계란, 그리고 육수를 우려낼 멸치 몇 마리, 감칠맛을 위한 다진 마늘, 간을 맞출 액젓, 시원함을 더해 줄 대파 한 줄기 정도면 충분하다. 뭔가 더 넣어야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좀 허전하다 싶지만 심플 이즈 더 베스트 아닌가. 요리 초보들이나 이런저런 재료들을 잔뜩 넣어서 재료빨을 노리는거다. 나도 이쯤 되면 초보 딱지 떼도 될 거라 본다. (막가자는 거지요?)


일단 멸치 육수를 내야지. 멸치 한 줌을 쥐어넣은 스테인리스 통을 끓는 물에 담궜다. 왠지 모르지만 상어가 떠오른다. 안전한 철창 케이지 안에서 바깥의 상어를 바라보는 그런 장면. 육수에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다진 마늘도 한 스푼 넣었다. 그러고보면 웬만한 한국 요리엔 다들 마늘이 들어간다. 동네마다 서 있는 교회며 음식마다 풍기는 마늘향 때문에라도 여기서는 흡혈귀 따위 감히 발을 붙이지 못하겠다. 이치로가 선동열의 공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했던 게 정말일지도 몰라.





메인 재료인 계란을 풀어넣었다. 원래 계란국 레시피를 찾아보면 계란을 그릇에 담은 뒤 휘저어서 풀어야 된다던데. 풀어놓은 계란물을 끓는 물에 살살 부어줘야 한데 뭉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설거지할 그릇만 하나 더 늘어나서 싫어. 계란을 톡 하고 깨서 끓는 육수에 넣은 뒤 재빨리 국자로 휘저었다. 뭉치지 말고 잘 풀어져라 풀어져. 너네끼리 친해지지 마란 말이야.


갑자기 회사의 K 부장이 생각났다. 부서원들끼리 얘기하고 웃고 차 마시고 이러지 말아야 한댄다. 서로 친해지면 일에 집중 안 하고 친목질이나 하면서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그럼 사람 대신 말 못하는 기계를 갖다놓고 일하든가.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원래 있던 부서원들을 하나 둘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고 본인이 원하는 신참들로 부서를 채우더라. 그리고 새 부서원들은 그의 바람대로 다들 서로 썩 친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업무 능률이 올라갔냐고? 글쎄. 하는 것마다 사건 사고가 터지는 걸 보니 그의 조직 관리 이론은 실패한 듯 하다.





액젓과 소금만으로는 간이 왠지 부족하다. 이럴 땐 후추지 역시. 예전에 간장으로 간을 한 번 했다가 시커먼 국물이 나와서 식겁한 적 있다. 간장은 조심해야 돼. 국물 색을 버릴 수가 있어.





파를 사각사각 잘라 마지막을 장식했다. 향긋하고 좋구만. 스페인 어딘가에는 엄청나게 큰 대파를 숯불에 직화구이로 해 먹는 '칼솟'이라는 요리가 있다고 했다. 어떤 음식 다큐에서 봤었다. 스페인 여행 가고 싶다.





음, 좋았어. 간이 딱 맞다. 계란국 따위는 이제 뭐 어렵지도 않구만.





드디어 메인 반찬인 고등어구이와 계란국이 완성됐다. 밑반찬을 꺼내고 밥솥에서 밥도 꺼내 놓으니 한 상 뚝딱 차려졌다. 보기좋은 게 먹기도 좋다고(하지만 MB는 못생긴 여자가 서비스가 좋다고...), 혼자 살 때보다 둘이 같이 살게 되니 플레이팅에도 신경쓰게 된다.





고등어 맛이 기가 막히네. 멀리서 공수해 온 보람이 있다. 짭짤한 것이 밥도둑이야 아주. 요런 맛난 걸 미세먼지의 주범이라 몰아세우면 어쩌란 말입니꽈아.





요리를 하면 할수록 점점 간도 잘 맞추고 맛도 잘 내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안심하고 한 끼 정도는 맡겨도 되겠어."

아내가 칭찬해줬다. 누군가를 믿어야만 권한 이양을 해 줄 수 있는 법, 아내의 믿음을 사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직 까마득해 보이지만) 요리왕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네번째 요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