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들이 서로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들 사이에 인식(개념)적인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럴 때 많은 경우 우리는 그들 사이의 우열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린다. 달리 말해, 인식적 경계설정에는 가치위계의 적용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판단의 결과가 대상들이 서로 동등하다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훨씬 더 빈번하게는 어느 것이 더 낫고 어느 것이 더 못하다는 판단이 내려진다. 이로부터 열등감과 우월감, 경멸과 존숭, 차별과 우대 등이 비롯된다. 때로 부모도 자식 가운데 더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어머니에게 그런 아이였다.
우리 안의 가치위계를 구체적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하는 것은 우리가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 많은 경우 필요불가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위계에 근거한 우열판단이 따르므로 인식적인 경계설정은 우리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을 보호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일 등이 가능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가치있게 여기는 열정을 통한 집중이란 것도 열정의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며 소홀히 하는 것이다. 경계는 삶을 명료하고 질서있고 활력있게 할 수 있다. (물론 장점이란 곧 단점이 되므로 경계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식에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늘 가치위계의 적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예를 들어, 대상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부족해서) 더 나음과 못함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내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의 한 특별한 예가 ‘순간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에 사는 것을 실천할 때 우리의 주의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만 집중된다. 이때 평안, 기쁨, 감사, 힘의 느낌 등이 따르기도 한다. 지금 한 순간에 집중할 때 바로 이전의 순간과 지금 이 순간은 절대적으로 차단된다. 곧 두 순간 사이에는 절대적인 경계가 확립된다. 그러나 두 순간 사이에 우열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가치위계가 작동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이 위계를 활용하고자 하는 자동(무의식)적인 의지(충동)는 있지만 어떤 이유로 이 작용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의지적으로 이 작용을 억제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아예 우리 정신이 이 위계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절대적인 경계가 무경계와 같아서일지도 모른다. 순간들 사이에 구분이 없어져, 곧 한 순간이 모든 순간이 되어 가치위계를 적용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