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마스크 끈, 가식의 임계점이 터지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가면 뒤에 숨겨진 눅눅한 민낯

by 풍운

길 위에서 갑자기 툭, 하고 귀 뒤의 긴장이 풀릴 때가 있다.

경쾌하다기엔 너무나 불길하고, 사소하다기엔 생의 당혹감이 서린 그 소리.

마스크 끈이 끊어졌다.

손가락으로 간신히 코 위를 누르며 주변을 살핀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꽂히는 착각에 빠진다.

아니, 사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다들 자기 손바닥 안의 작은 액정에 시선을 저당 잡힌 채, 타인의 민낯 따위엔 단 1그램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그저 내 안의 결벽증적인 자아와 사회적 체면이 스스로를 벌거벗겨진 죄인으로 몰아세울 뿐이다.

마스크는 지난 몇 년간 우리에게 단순한 방역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불쾌한 숨결을 막아주는 방패이자, 나의 일그러진 표정을 투명하게 숨겨주는 안식처였다.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지 않아도 되는 비겁한 자유, 적당히 무표정하게 있어도 '비사회적'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있었던 기묘한 평화.

그 평화가 고작 몇 십 원도 안 될 법한 얇은 고무줄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관계도 이 마스크 끈과 다르지 않다.

서로에게 예의라는 이름의 텐션을 유지하며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취약한 연결 부위가 터져나간다.

끊어진 끈을 붙잡고 길 한복판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참으로 처량하다.

침을 발라 붙일 수도 없고, 매듭을 지어 다시 귀에 걸기엔 이미 너무 짧아진 그 인연의 끝단.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수선하려 애쓰지만, 한 번 임계점을 넘긴 고무줄은 결코 이전의 탄성을 회복하지 못한다.

억지로 묶어버린 매듭은 귀 뒤를 더 아프게 파고들 뿐이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끊어지기 직전의 마스크를 쓰고 연극을 하는 배우들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회의실의 무거운 공기 속에서, 심지어 사랑한다는 고백을 내뱉는 식탁 위에서도 우리의 '진짜 얼굴'은 마스크 뒤에 숨어 눅눅한 침을 삼킨다.

마스크 끈이 끊어지는 순간 드러나는 것은 어떤 질병의 공포가 아니라, 오랫동안 정교하게 가려져 있던 고독과 위선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하지만 풍구나는 그 찰나의 수치심 속에서 생의 날 선 본질을 본다.

끈이 끊어져 당황하는 나의 흔들리는 눈동자, 급하게 가방을 뒤져 새 마스크를 찾는 그 절박함.

이것은 단순히 부끄러움이 아니다. 가면이 없으면 타인과 마주할 용기조차 없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본능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르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비정한 사회 시스템에 오차 없이 편입되어 살아남으려는 그 가련한 생존 의지야말로 내가 마주해야 할 가장 아픈 진실이다.

세상은 나의 끊어진 마스크 끈에 관심이 없다. 오직 나만이 그 사소한 끊어짐을 인생의 거대한 재난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가끔은 끈이 끊어진 채로 숨을 크게 들이켜도 좋다.

비록 그 공기가 매연 섞인 도시의 차가운 것이라 할지라도, 가면 뒤에 갇혀 질식해가던 나의 진짜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해방의 순간일지도 모르니까.

오늘 나의 귀 뒷면은 안녕한가.

너무 세게 당겨진 마음의 끈이 곧 터져나갈 것 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툭 끊어버리고 잠시 숨을 고르길 권한다.

다시 새 마스크를 꺼내 써야 하는 것이 도망칠 수 없는 우리 사회인들의 숙명일지라도, 잠시 드러난 맨얼굴의 시원한 해방감 정도는 누릴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길바닥에 버려진 끊어진 고무줄 조각을 보며 나는 내가 지탱해온 삶의 무게를 잰다. 아주 가볍고도, 아주 무거운 그 가식의 무게를.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그 고무줄은, 정말 나의 자존감이었을까 아니면 비겁한 안도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