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마네킹의 미소, 가식적 친절이 남긴 기괴한 적막

조명이 꺼진 진열장 뒤에 유기된 가짜 인간들의 시간

by 풍운

백화점의 거대한 셔터가 굉음을 내며 바닥에 닿는 순간, 화려했던 자본의 성전은 순식간에 차가운 묘지로 변한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보석과 명품들이 즐비한 그 복도에 남는 것은, 낮 동안의 소란을 비웃듯 가라앉은 서늘한 적막뿐이다.

그리고 그 적막의 중심에는, 조명이 꺼진 뒤에도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한 채 기괴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마네킹들이 서 있다.

이들은 하루 종일 감정을 죽이고 고객들의 비위를 맞추던 이들의 완벽한 복제품이자, 자본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마네킹의 매끄러운 플라스틱 피부 위에는 낮 동안 쏟아진 수천 개의 시선과 탐욕이 지문처럼 묻어 있다.

누군가는 이들의 목에 걸린 목걸이 가격을 보며 경멸을 보냈고, 누군가는 이들이 걸친 옷을 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한탄했다.

하지만 마네킹은 그 모든 감정의 배설을 묵묵히 받아내며, 오직 자본이 명령한 그 뻣뻣한 각도와 인위적인 입꼬리를 유지할 뿐이다.

그 모습은 진상 손님의 모욕 앞에서도 자존심을 으깨가며 미소를 지어야 했던 판매원들의 마비된 얼굴과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셔터 뒤의 어둠 속에서 마네킹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유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조명이 켜져 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질 듯 화려한 주인공처럼 보였지만, 빛이 사라진 뒤의 그들은 그저 값비싼 옷을 걸치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우리는 백화점의 화려함에 취해 그 안에 매몰된 인간성을 보지 못한다.

명품 가방 하나를 팔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떼어주며 감정 노동의 제단에 바친 이들의 노고는, 폐점 후의 먼지처럼 소리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사실 이 거대한 유리 성벽 안에서 진짜 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은 매장 안의 물건들뿐이다.

사람은 그 물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경이거나, 결제를 돕는 부품으로 전락한다.

마네킹의 그 굳어버린 관절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경직된 노동을 상징한다.

고객이 원할 때는 언제든 상냥한 인형이 되어야 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먼지 덮개에 씌워져 창고로 처박혀야 하는 운명.

자본은 우리에게 마네킹처럼 감정을 지우고 규격화된 친절만을 생산하라고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으깨진 진짜 슬픔과 분노는 백화점의 환기구를 타고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우리는 다시 말끔하게 세척된 마네킹이 되어 진열대 위로 복귀한다.

어두운 매장 한구석, 마네킹의 그림자가 대리석 바닥 위에 길게 늘어질 때 그 공허함은 극에 달한다.

아무리 비싼 옷을 걸치고 있어도 그 속은 텅 비어 있는 플라스틱일 뿐이라는 사실이,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우리의 텅 빈 눈동자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가짜 미소를 팔아치웠는지, 그 대가로 손에 쥔 것은 결국 타인의 욕망을 대신 걸친 껍데기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조명이 꺼진 매장 안을 서성이는 건 이제 사람이 아니라, 주인을 잃은 그림자들뿐이다.

화려한 금칠이 된 로고 아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얼마나 더 깎아내야 생존을 허락받을 수 있는 것일까.

청소 기계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미세한 흔적조차 자본의 질서 속에서 말끔히 지워지지만, 마네킹의 기괴한 미소만큼은 어둠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이 거세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이자, 더 이상 울 수조차 없게 된 이들이 내뱉는 무언의 비명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그 미소를 가면처럼 쓰고, 셔터가 올라가는 순간 다시 무대 위로 던져진다.

어제 으깨졌던 감정은 사물함 속에 유니폼과 함께 구겨 넣고, 다시금 플라스틱처럼 매끄러운 피부를 가장한 채 손님을 맞이한다.

조명이 다시 켜지면 우리는 또다시 완벽한 마네킹이 되어, 누군가의 환상을 위해 자신의 실체를 지워내는 지독한 노동을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이 화려한 유리 성벽 안에서 생존을 허락받은 우리들의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진열대 위의 마네킹이다.

서로의 텅 빈 속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비싼 옷을 걸칠 수 있기를 꿈꾸며 기괴한 미소를 연습한다.

셔터가 다시 올라갈 때까지 주어지는 짧은 어둠만이, 우리가 온전한 나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가 된다는 사실이 못내 가슴을 짓누른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욕망을 전시하는 장식품이 되어, 스스로가 마모되어 가는 소리를 외면한 채 다시 무대 위에 선다.


조명이 꺼진 진열장 속 마네킹의 미소를 보며, 나는 비로소 하루 종일 내 얼굴에 덧칠했던 가짜 친절의 무게를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