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구역의 담벼락, 유기된 기억들의 마지막 호흡

붉은 스프레이로 그어진 생존의 마침표

by 풍운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담벼락마다 선명하게 그어진 붉은색 '철거' 글자다.

그것은 마치 도축을 앞둔 가축의 몸에 남겨진 비정한 낙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낙후된 곳'이라 부르며 하루빨리 허물어지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 담벼락에 몸을 기대어 수십 년의 풍파를 견뎌온 이들에게 그곳은 자신의 생(生)이 박박 긁혀 새겨진 기록부다.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자리마다 누군가의 가난이 흉터처럼 남아 있고,

빛바랜 벽보 조각들은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지난 계절의 소식들을 애처롭게 붙들고 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자본은 이 낡은 골목의 기억을 '비효율'이라 규정한다.

낡은 것은 더러운 것이고, 더러운 것은 치워져야 한다는 논리 앞에 누군가의 평생은 순식간에 쓰레기가 된다.

우리는 번듯한 새 아파트 조감도를 보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지만,

그 화려한 콘크리트 아래 깔리게 될 이 낮은 담벼락들의 신음 소리에는 철저하게 귀를 닫는다.

사실 이 낡은 담벼락은 세상이 감추고 싶어 하는 우리의 진짜 민낯이다.

금이 간 틈새로 삐져나온 이름 모를 풀꽃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우리네 고단한 일상을 닮았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것'을 찬양하며 우리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게 만들지만,

진짜 비참한 건 낡은 집이 아니라 기억을 돈으로 환산해버리는 우리의 건조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포클레인이 한 번 휘두르는 팔뚝에 수십 년의 이야기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그 먼지 속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옆집과 나누던 된장찌개 냄새도, 자식 뒷바라지에 굽어버린 어느 노모의 깊은 한숨도 섞여 있을 것이다.

자본은 그 모든 감정의 퇴적물을 깔끔하게 밀어버리고 그 위에 차갑고 높은 장벽을 다시 세울 것이다.

우리는 그 무너지는 담벼락을 보며 '세상 참 좋아진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 우리가 서로의 구질구질한 삶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비겁한 고백이기도 하다.

깔끔한 신도시의 가로등 아래서는 서로의 가난을 들킬 염려가 없기에, 우리는 그 익명의 안락함을 위해 낡은 동네의 숨통을 끊는 데 동의한다.

이곳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등 뒤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담벼락을 때린다.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이들이 남긴 희미한 손때만이 이곳이 한때 온기 있는 집이었음을 증명한다.

세상이 설계한 '발전'이라는 궤도에서 이탈한 것들은 이렇게 소리 없이 풍경 밖으로 유기된다.

우리는 그 폐허 위를 걸으며 나의 삶은 결코 이렇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라 자위하지만,

사실 우리 역시 자본이 보기에 쓸모를 다하는 순간 언제든 철거될 수 있는 소모품일 뿐이다.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보이는 텅 빈 방안은 주인 잃은 신발 한 짝처럼 쓸쓸하다.

기억이 거세된 자리에 들어설 차가운 고층 건물들이 과연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우리는 더 깨끗한 곳으로 옮겨가지만, 그만큼 우리의 영혼은 더 얇고 가벼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날이 어두워지면 붉은 낙인들은 더욱 선명하게 피를 흘리는 듯 보인다.

내일이면 사라질 이 낡은 흔적들이 마지막으로 내뿜는 비릿한 흙냄새가 코끝을 찡하게 울린다.

우리는 그렇게 무너져가는 것들의 마지막 숨결을 외면한 채,

다시금 견고하고 차가운 자본의 성전 안으로 숨어든다.


지워지는 담벼락 위에 그어진 붉은 낙인을 보며, 나는 언젠가 철거될 나의 시간들이 남길 마지막 자국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