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의 햇볕 대신 스스로의 온기로 견디는 거처에 대하여
도시의 가장 깊고 어두운 혈관을 타고 들어가면, 인간의 삶이 가로세로 두 걸음 안에 조밀하게 담긴 기괴한 벌집을 마주하게 된다.
고시원.
이름은 고상한 성취를 꿈꾸는 곳이라 하지만, 실상은 도시의 빠른 속도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이들이 스스로를 유배시킨 보관함에 가깝다.
복도는 어둡고 비좁다. 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수조차 없는 그 길은, 타인과의 연결을 잠시 유예한 채 각자의 방 안으로 숨어든 고립된 영혼들의 통로다.
그 좁은 복도 양옆으로 늘어선 문들은 마치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단단한 섬들처럼 서 있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방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철저한 '부재(不在)'다.
이 방에는 인간다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햇볕이 충분히 닿지 않는다.
벽 윗부분에 간신히 매달린 손바닥만 한 창문은 환기를 위한 작은 틈일 뿐, 태양의 풍요로운 온기를 들여보내기엔 역부족이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해진 그 방 안에서 인간의 시간은 낡은 벽지의 결을 따라 천천히 마모되어 간다.
벽은 너무나 얇아 옆방의 고단한 숨소리 하나까지도 나의 공간으로 스며든다.
타인의 삶이 나의 고요를 침범하고, 나의 고독이 타인의 휴식에 닿는 이 기묘한 공생 관계 속에서 개인의 진심은 때로 견뎌야 할 무게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비좁은 공간을 '청춘의 열병'이나 '잠시 거쳐 가는 과정'이라는 말로 애써 위로하곤 한다.
하지만 그 방의 주인들이 매일 마주하는 것은 찬란한 미래보다 매트리스 밑으로 켜켜이 쌓여가는 현실의 무게감이다.
편의점 도시락의 냄새, 세탁해도 가시지 않는 눅눅한 체취, 그리고 좁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집들.
그 모든 것들은 이 사회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허락한 공간이 얼마나 인색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방에서 우리의 마음은 빛을 잃은 식물처럼 때로 창백해지기도 한다.
창문 밖으로 흐르는 세상의 소음은 아득하게만 들려오고, 그 세상 속으로 온전히 편입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자신의 거처를 한없이 좁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자본은 공간을 효율로 나누고 인간을 그 틀에 맞추어 넣는다. 그 좁은 틈새에서 삶은 조금씩 깎여 나가고 변형된다.
창문도 없는 방에 몸을 뉘여야 하는 이들에게 넉넉한 주거의 권리는 멀게만 느껴지는 이상이다.
우리는 달을 향해 고개를 들 여유조차 잊은 채, 작은 콘크리트 상자 안으로 자신의 존재를 구겨 넣는다.
부풀어 오르는 욕망은 벽에 부딪혀 잦아들고, 뜨거웠던 열정은 환풍기의 단조로운 기계음 속으로 흩어진다.
고시원의 문을 닫고 누우면, 세상은 나를 잊은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내가 세상을 잠시 밀어내고 이 좁은 틈새로 숨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토록 좁은 곳에 인간을 머물게 하며 그들의 꿈을 작게 규정하는 동안 사회의 온도는 그 작은 창문만큼이나 서늘해졌다는 사실이다.
방문을 나설 때마다 느껴지는 적막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비좁은 틈새에서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며 살아갈 것인가.
좁은 방들이 모여 이룬 이 거대한 상실의 풍경은, 언젠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다운 삶에 대한 서글픈 질문이다.
햇볕이 닿지 않는 방에서 우리가 정말로 잃어버린 것은 온기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야와 여백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