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의 효율 뒤에 가려진 비정한 유통기한의 칼날
편의점 냉장고 안에 각을 세우고 도열한 삼각김밥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딱딱하게 잡힌 그 정삼각형의 모서리는, 진열대 위에서 누군가 자신을 선택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우리네 초상과 소름 돋게 닮아 있다.
이들은 자기가 언제 폐기될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말이 없다.
포장지 구석에 찍힌 그 짧은 숫자, 유통기한이라는 이름의 선고가 내려지면 아무리 멀쩡해도 쓰레기통으로 처박혀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태도다.
사실 우리도 이 삼각김밥의 처지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회사에서, 혹은 이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정해놓은 '쓸모'라는 시간표 안에 들기 위해 매일 스스로를 깎아가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진열대 앞에 서서 아주 짧은 시간 멈춰 선다.
이걸 먹고 시간을 벌지, 아니면 돈을 조금 더 보태서 번듯한 도시락을 먹을지 저울질하는 찰나다.
그 찰나의 순간에 삼각김밥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항상 선택의 맨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제외되는 가련한 선택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딱 1초만 지나도 이 세상은 비정하게 돌변한다.
방금 전까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 순식간에 처리해야 할 골칫덩이 폐기물로 이름이 바뀐다.
아르바이트생이 무심하게 바코드를 찍고 폐기함에 툭 던져 넣을 때, 그 검은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쌀알 뭉치가 아니다.
그걸 고르려던 누군가의 간절한 허기, 그리고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버티려던 인간의 서글픈 의지가 함께 으깨져 버려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소름 돋게 조용하고 당연하게 흘러간다.
누구도 미안해하거나 책임질 필요가 없다.
그저 규칙이 그러니까, 시간이 다 됐으니까 버려지는 게 당연하다고 다들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상하지도 않은 온기를 쓰레기 취급하는 데 익숙해진 것인지 묻게 된다.
조금 늦었다고, 당장 쓸모없다고, 기준에서 1밀리미터 벗어났다고 내팽개치는 건 비단 삼각김밥만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바로 낙오자 낙인이 찍히고, 효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편의점 조명 아래서 매일 삼각김밥이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도 사람다운 것들이 소리 없이 지워지고 있다.
그걸 보면서도 우리는 다들 남의 일인 양 무감각하게 지나친다.
그저 내 등에 찍힌 바코드는 아직 유효한지, 나는 아직 버려질 순번이 아닌지만 확인하며 비겁하게 안도한다.
사실 정말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했던 건 저 삼각김밥이 아니라, 인간을 숫자로만 재단하는 이 비정한 시선인데 말이다.
오늘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핑계로 멀쩡한 것들이 봉투째 사라져 간다.
우리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굳이 아는 척하지 않고, 다음 진열대로 시선을 옮겨버린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혹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그 씁쓸한 풍경을 외면하는 것이다.
우리는 편의점을 나서며 차가운 삼각김밥의 비닐을 뜯는다.
손끝에 닿는 그 차가운 촉감이 꼭 내 손등처럼 느껴져서 자꾸만 헛기침이 나온다.
이걸 먹어야 또 오후를 버틸 힘이 생기고, 그래야 내일 또 진열대에 불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밥알들이 가끔은 모래알처럼 껄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삼키고 있는 게 밥이 아니라, 하루하루 깎여 나가는 우리 자신의 자존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검은 봉투 속에 처박힌 어제의 친구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사람들 틈으로 섞여 들어가 각을 세운다.
아직은 내가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직은 버려질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밤이 깊어 편의점 불빛이 더 밝아질 때쯤, 우리는 또다시 그 진열대 앞을 서성인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유통기한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처지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좁은 삼각형 틀 안에 갇혀 오늘도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낸다.
우리의 삶 역시 이 차가운 편의점의 진열대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혹은 그저 시간이 지나 폐기되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의 바코드를 닦는 나날들.
그 치열한 생존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마모된 얼굴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다시 바코드를 찍기 위해 편의점의 밝은 조명 아래로 걸어 들어간다.
입안에서 따로 노는 차가운 밥알들이 묻는다. 너는 정말 오 하루를 산 것이냐, 아니면 그저 내일 버려지지 않기 위해 유통기한만 하루 더 벌어낸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