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에서 깜빡이는 불안의 수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창밖의 날씨도, 곁에 누운 이의 안부도 아니다.
머리맡에서 밤새 수액을 맞듯 전선을 타고 에너지를 채운 휴대폰의 숫자, '100%'라는 완벽한 안도감이다.
그 세 자리 숫자가 주는 가짜 평온을 품에 안고 우리는 하루를 시작한다.
휴대폰 우측 상단의 작은 사각형은 현대인의 심박동기나 다름없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우리의 발걸음은 초조해지고, 눈동자는 벽면의 콘센트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번뜩인다.
배터리가 20% 아래로 떨어져 숫자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삶의 치명적인 경고등이라도 켜진 듯한 실존적 공포를 느낀다.
1%라는 숫자가 깜빡일 때, 그것은 기계의 마지막 유언이자 곧 세상과 단절될 것이라는 고립의 예고장이 된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손바닥 안의 기계가 방전되는 것에는 이토록 민감하면서,
정작 내 몸과 마음의 잔량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에는 왜 이리도 무심한 것일까.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지면 즉시 충전기를 찾아 연결하면서도, 내 영혼이 번아웃(Burn-out)되어 붉은 비명을 내뿜을 때는 '조금만 더', '내일까지만'이라며 스스로를 사지로 밀어 넣는다.
기계의 방전은 결함이라 여기면서, 인간의 방전은 나태함이나 나약함으로 치부해버리는 이 비정한 이중성.
우리는 '연결되지 못함'을 두려워한다. 배터리가 꺼진다는 것은 곧 타인의 소식으로부터,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소외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소외가 두려워 우리는 카페의 구석진 자리, 콘센트가 있는 불편한 의자를 기꺼이 감수한다.
전선이라는 생명선에 묶인 채 꼼짝달싹 못 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발전소에 저당 잡힌 노예의 초상과 닮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방전은 배터리가 0%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충전기 선에 묶여 자유를 잃었을 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의 화려한 일상을 훔쳐보기 위해, 의미 없는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화면 속의 숫자는 100%를 향해 가지만, 그것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서서히 꺼져간다. 외부는 충만하나 내부는 빈사 상태인 역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급속 충전'이 아니라 '완전한 방전'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전선을 뽑고, 화면이 꺼진 검은 유리창 속에 비친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과의 연결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남이 건네준 전기적 자극에만 의존하는 삶은, 결국 타인의 의지에 의해 언제든 꺼질 수 있는 가냘픈 등불에 불과하다.
오늘도 우리는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침대 위에서 낮은 숫자를 보며 가슴을 졸인다.
보조 배터리를 가방 가득 챙기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당신의 가방 속에, 지친 마음을 단 10%라도 채워줄 '마음의 충전기' 하나쯤은 마련되어 있는가.
기계는 다시 충전하면 그만이지만, 한 번 무너져 내린 마음의 회로는 다시 이어붙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붉게 점멸하는 휴대폰의 경고등을 보며 이제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
지금 정말로 수액이 필요한 것은 손바닥 안의 기계인가, 아니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버티고 있는 나 자신인가.
휴대폰의 1%는 기계의 정지를 의미하지만, 인간의 1%는 비로소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라는 생의 마지막 간청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