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어버린 발자국, 지워지지 않는 후회의 침전

유연했던 시간이 돌처럼 굳어버릴 때 남겨진 것들

by 풍운

공사장 구석, 회색빛 시멘트 바닥 한복판에 생뚱맞은 발자국 하나가 움푹하게 패여 있다.

누군가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내디뎠을 찰나의 실수였을 것이다.

그때는 신발 끝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유연했을 것이며, 조금만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지워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을 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습기가 빠져나간 자리를 차가운 물리적 경화가 채우면서, 그 가벼웠던 실수는 이제 망치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흉터가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건설 현장의 해프닝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제때 수습하지 못한 후회들이 어떻게 영구적인 형틀로 굳어가는지를 보여주는 비정한 은유다.

인간의 생애 중 어느 시기에 우리는 시멘트처럼 유연한 가능성의 시간을 통과한다.

그 시기에는 모든 선택이 쉽게 수정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고, 우리가 저지른 실수나 잘못된 발걸음도 언제든 덧칠하여 감출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공사장은 우리의 미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본과 효율의 논리는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삶의 형태를 서둘러 고착화한다.

유연함이 사라진 자리에 책임과 관성이라는 시멘트가 들이부어지면, 과거에 무심코 내디뎠던 그릇된 발걸음은 수정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우리 삶의 지반에 그대로 침전된다.

이제 우리는 그 발자국을 지울 수 없다.

그저 그 위를 매일 걸어 다니며, 움푹 파인 굴곡에 발이 걸릴 때마다 그 시절의 무지를 뼈저리게 되새길 뿐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매끄럽고 완벽한 바닥이 되라고 강요한다.

결함 없는 이력, 오차 없는 경력, 번듯하게 포장된 성공의 외피들.

하지만 그 화려한 빌딩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수많은 실수와 후회가 뒤섞여 딱딱하게 굳어버린 누더기 같은 시멘트 바닥이다.

우리는 자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그 위에 타일과 대리석을 깔지만, 침묵의 밤이 찾아오면 대리석 아래 숨어 있는 비뚤어진 발자국의 서늘한 감촉을 느낀다.

후회가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현재의 나를 지탱하는 바닥의 일부가 되어 결코 변하지 않는 견고함을 획득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돌처럼 굳어버린 과거는 반성이라는 이름의 눈물로 적셔보아도 결코 다시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고정된 형태를 안고 남은 생의 건물을 올려야 하는 비정한 건축가들이다.

공사장 구석의 발자국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 흔적은 우리에게 매 순간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인지를 경고한다.

유연할 때 바로잡지 못한 것은 결국 나를 정의하는 낙인이 된다.

우리가 자유라고 믿었던 시간들이 어떻게 구속의 기반이 되는지를, 저 굳어버린 회색빛 흔적은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성숙이란 어쩌면 내 삶의 바닥에 패인 발자국들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굴곡조차 내가 딛고 서야 할 지면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비록 매끄럽지 못한 인생일지라도, 그 울퉁불퉁한 후회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입체감임을 인정해야 한다.

변하지 않는 과거의 후회 위에 다시 오늘이라는 벽돌을 쌓아 올린다.

우리는 그렇게 굳어버린 상처를 딛고 조금 더 신중한 다음 보폭을 내딛는 법을 배운다.


습기를 잃고 돌이 된 발걸음의 흔적은, 우리가 가장 가볍게 내디뎠던 순간이 사실은 가장 무거운 운명의 기초였음을 뒤늦게 고발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