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번 테이블의 고독, 치환된 이름들

숫자로만 존재하는 우리의 익명적인 식탁에 대하여

by 풍운

어느 식당에 들어서든 우리는 가장 먼저 비어 있는 숫자를 찾아 몸을 누인다.

테이블 귀퉁이에 투박하게 붙어 있는 작은 번호표.

그 순간부터 나는 누군가의 친구도, 어느 집의 자식도, 어떤 직함의 주인도 아닌 그저 '12번' 혹은 '7번'이라는 간결한 부호로 명명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름을 잃은 채 잠시 동안 숫자로 존재하기를 자처한다.

점심시간의 분주한 식당은 숫자들의 각축장이다.

"5번 테이블에 제육 하나!", "8번 테이블 계산입니다!"

허공을 가르는 그 외침 속에서 개인의 서사나 감정은 끼어들 틈이 없다.

우리는 그 숫자가 가리키는 좁은 영토 안에 앉아 허기를 채우고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누군가 닦아내야 할 그릇의 잔해와 빠르게 식어가는 온기뿐이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떠난 저 '12번' 자리에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이름이 잠시 머물다 지워졌을까.

누군가는 그곳에서 이별을 고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간절한 합격 소식을 들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차마 삼키지 못한 눈물을 밥물에 섞었을지도온다.

하지만 테이블 번호표는 그 모든 삶의 파동을 무심하게 삼켜버린다. 번호표에게 중요한 것은 그곳에 앉은 이의 슬픔이 아니라 그가 주문한 메뉴와 결제해야 할 금액뿐이다.

이러한 숫자로의 치환은 식당 문을 나선 뒤에도 우리의 삶을 은밀하게 지배한다.

우리는 사번으로, 수험번호로, 아파트 동호수로, 혹은 은행 대기번호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산다.

효율과 속도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복잡한 이름보다는 명확한 숫자가 훨씬 편리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숫자는 감정을 배제하고, 차이를 소거하며, 인간을 관리 가능한 단위로 전락시킨다.

고시원이 공간의 유배지였다면, 이 번호표 붙은 식탁은 관계의 유배지일지도 모른다.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목소리는 그저 배경음이 되고,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더 작은 섬에 갇혀 자신이 숫자로 불리는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 공간에서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근원적인 외로움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대체 가능한 '번호'로서 소비되는 이 비정한 질서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심 속에서 정작 나를 나의 이름으로 불러주는 공간 하나를 갖지 못할 때, 우리는 군중 속의 고립을 경험한다.

번호표가 붙은 테이블은 우리가 잠시 머무는 정거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부호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증거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나는 다시 나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가방을 챙긴다.

하지만 카운터에서 건네받는 영수증 위에도 나의 이름 대신 결제 승인 번호만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우리는 언제쯤 이 숫자의 굴레를 벗어나 서로의 고유한 결을 마주 볼 수 있을까.

오늘도 누군가는 텅 빈 식탁에 앉아 자신이 숫자가 아닌 인간임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물컵을 만지작거린다.

가장 대중적인 식탁 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허기를 채울 음식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온전히 담아낼 고유한 부름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부호화의 질서 속에서, 누군가의 부름을 기다리는 마음은 호출기의 기계음으로 치환되어 무감하게 울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