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발생기의 소음 뒤에 숨겨진 우리들의 모습
횟집 앞을 지나다 보면 푸른 빛을 내뿜는 수조 속 물고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 활발한 움직임을 보며 '싱싱해서 맛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 살고 싶어 안달 난 게 아니라, 좁은 곳에 갇힌 생명이 내뱉는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투명한 유리 벽 너머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 가깝지만,
그 두꺼운 유리 한 장이 만든 경계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절벽과도 같다.
이 모습은 매일 정해진 길을 오가는 우리들의 일상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산다고 믿지만, 사실은 세상이 정해놓은 규격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좁은 사무실, 혹은 똑같이 생긴 아파트라는 수조 안에서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 돋보이기 위해 서로를 밀쳐낸다.
언제 나를 지목해 건져 올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기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산소 거품 소리에 슬쩍 묻어버린 채 살아간다.
수조 속의 물은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먼저 사라진 물고기들의 흔적과 죽음의 기운이 묘하게 섞여 있다.
우리는 그 비릿하고 좁은 환경에 익숙해져서, 누가 주는 월급이나 먹이에 고마워하며 하루하루를 겨우 버틴다.
바다의 파도 소리 같은 건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저 돌아가는 모터 소리를 삶의 박동이라 믿으며 유리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내 처지처럼 느껴져 마음이 저릿하다.
세상은 우리에게 '성공'이라는 더 큰 수조를 보여주며 열심히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조가 조금 커진다고 해서 우리가 바다로 가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깨끗하고 조금 더 비싼 우아한 감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여전히 갇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옆 사람보다 내가 조금 더 비싼 값에 팔리기를 바라는 서글픈 경쟁을 계속한다.
가장 슬픈 건 우리가 이제 이 수조 밖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이다.
유리 벽 밖은 위험하다고, 거기선 숨을 쉴 수 없다고 배우며 살아온 탓이다.
그래서 우리는 투명한 감옥 안에서 주는 작은 안락함에 안주해버린다.
가끔 용기 있게 튀어 나가는 이들을 보며 '제정신이 아니다'라며 손가락질하는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밤이 되어 식당 불이 꺼지면, 수조 안은 비로소 조용해진다.
낮 동안 사람들에게 팔리기 위해 억지로 헤엄치던 짓을 멈추고, 물고기들은 어둠 속에서 쉬어간다.
그들도 꿈속에선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까. 우리 역시 잠자리에 들어 내일 출근을 걱정하다가, 닿을 수 없는 자유를 한 번 꿈꿔보고는 다시금 현실이라는 벽에 기대 잠이 든다.
결국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차례 대기자들일 뿐이다.
오늘 식탁 위로 올라간 저 물고기가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 하나로 하루를 버티지만, 그 안도감이 얼마나 비겁한지 알기에 뒷맛이 참 쓰다.
우리는 그렇게 좁은 공간에 갇혀, 서로의 지느러미가 부딪히는 감촉을 위안 삼아 다시 의미 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날이 밝고 다시 조명이 켜지면, 수조 안은 다시 '싱싱함'으로 포장된 잔인한 무대가 된다.
우리는 어제보다 더 열심히 움직이며, 아직은 쓸모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을 뻐금거린다.
그것이 이 좁은 수조 안에서 우리가 배운 유일한 생존 방식이자, 가장 서글픈 하루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투명한 유리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맴도는 물고기의 유영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헤엄치고 있는 이 일상의 수심이 얼마나 얕은지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