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하얀 천 자락에 머문 숨

생과 사를 가르는 가장 가냘픈 경계선에 대하여

by 풍운

세상에서 가장 얇으면서도 가장 넘기 힘든 벽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응급실의 하얀 비닐 커튼을 말하겠다.

그것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가림막이 아니다. 한쪽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곡이 터져 나오는 우리 삶의 가장 비정하고도 가냘픈 국경선이다.

이 얇은 막은 인간이 구축한 그 어떤 견고한 성벽보다도 단호하게 타인의 고통을 격리하고, 동시에 나의 안녕을 시험한다.

응급실의 공기는 언제나 날카롭게 조율되어 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금속성의 기계음, 복도를 가로지르는 다급한 발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란을 무겁게 짓누르는 특유의 정적.

그 서늘한 긴장 속에서 얇은 천 하나가 침대와 침대 사이를 가로지른다. 안쪽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기에, 밖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그 커튼은 세상 그 무엇보다 거대하고 두려운 존재가 된다.

어떤 이에게 그 천은 잠시의 안식을 허락하는 포근한 이불이 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얼굴을 가려버리는 영원한 이별의 장막이 되기도 한다.

커튼 안쪽에서는 매 순간 우주를 뒤흔드는 전쟁이 벌어진다. 심박동기의 단조로운 파동에 한 가족의 역사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고, 의료진의 짧고 절박한 외침 속에 한 사람의 내일이 결정된다.

그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는 동안, 커튼 밖의 세상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하게 흐르기도 한다.

바로 옆 침대의 환자는 TV 채널을 돌리며 무료함을 달래고, 누군가는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평범한 안부를 묻는다.

단 몇 센티미터의 거리. 누군가의 세계가 무너지는 굉음이 천 조각 하나에 걸려 이웃한 이에게는 작은 소음조차 되지 못하는 이 먹먹한 풍경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감 없는 자화상이다.

우리는 이 얇은 막 앞에서 인간의 운명이 얼마나 가냘픈 것인지를 아프게 목격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견고한 일상을 영위하던 이가 단 한 번의 사고, 혹은 예고 없이 찾아온 질병으로 인해 커튼 속의 익명으로 전락한다.

그곳에서는 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사회적 지위도, 누군가 부러워하던 막대한 부(富)도 무력하다.

오직 뛰어야 할 심장의 박동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셔야 할 산소 한 모금만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유일한 척도가 된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밖의 논리는 이 한 뼘의 천 안쪽으로 들어오는 순간 일제히 무너져 내린다.

커튼이 젖혀지는 순간, 밖에서 숨을 죽이던 이들의 운명도 다시 세상 밖으로 공표된다.

"이제 괜찮습니다"라는 안도의 말과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 사이의 그 찰나의 침묵.

그 순간을 결정짓는 것은 때로 현대 의학의 정교한 기술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흐름이다.

우리는 그 흐름에 의해 커튼 안쪽으로 잠시 불려 들어갔다가, 저마다의 결과를 손에 쥐고 다시 커튼 밖으로 밀려 나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 또한 수많은 보이지 않는 커튼들로 가득 차 있다.

타인의 아픔을 교묘히 가리고 있는 서툰 무관심, 이웃의 절망을 외면하게 하는 편리한 거리감들.

우리는 저마다의 커튼 뒤에 숨어 나만은 영원히 그 안쪽의 비극적인 주인공이 되지 않을 것처럼 태연하게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응급실의 그 하얀 천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당신이 오늘 누리는 이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은, 단지 아직 당신의 커튼이 닫히지 않았다는 경이로운 행운의 산물일 뿐이라고.

비릿한 소독약 냄새가 떠도는 그 공간에서, 나는 바람 없이 흔들리는 커튼의 자락을 보며 다시금 삶의 태도를 배운다.

내가 지금 커튼 밖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이별의 장막이 아닌 가족의 온기를 나누는 집 안에서 편안히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눈물겨운 축복인지를.

언젠가 우리 모두는 반드시 그 하얀 천 안쪽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를 끝까지 지탱해 줄 힘은 세상의 화려한 명성이 아니라, 커튼 밖에서 나의 이름을 간절히 불러줄 단 한 사람의 목소리뿐이다.

응급실의 커튼은 오늘도 무심하게 흔들리며 수많은 삶과 죽음을 실어 나른다. 그 얇은 천이 그려내는 궤적 속에 우리의 소중한 오늘이 얼마나 애틋하게 담겨 있는가.


그곳에서 마주한 정적은 말한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우주의 끝만큼 먼 것이 아니라, 단 한 뼘의 천이 흔들리는 그 찰나의 틈새 속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