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뒤의 배신, 꺾인 비닐우산의 말로

필요의 유통기한이 끝난 뒤 버려지는 일회용 관계에 대하여

by 풍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폭우가 쏟아지는 날, 우리는 편의점 가판대에서 몇 천 원짜리 비닐우산 하나를 급히 집어 든다.

그 순간 그 투명한 비닐 막은 나의 옷을 보호하고 체온을 지켜주는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방패가 된다.

우리는 우산 손잡이를 꼭 쥔 채 거센 비바람을 견디며 집으로, 혹은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가 내리는 동안, 우산과 나는 가장 밀접한 공생 관계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우산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어진다.

젖은 비닐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고, 살대가 하나라도 휘어진 우산은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길가 쓰레기통 옆이나 전신주 아래, 흉측하게 뼈대가 드러난 채 나뒹구는 우산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서 버려진 부상병의 참혹한 뒷모습을 닮아 있다.

우리는 이 풍경에서 현대 사회가 관계를 맺고 끊는 지독한 '효율성'의 민낯을 목격한다.

누군가에게 내가 쓸모 있을 때만 '우산'으로 불리고, 그 필요의 유통기한이 끝나는 순간 가차 없이 '쓰레기'로 치환되는 과정.

자본주의가 학습시킨 이 소모적 태도는 물건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으로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산 같은 사람'을 곁에 두었다가 비가 그친 뒤 지워버렸는가.

힘겨운 고난의 시절,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 세상의 비난을 대신 맞아주던 이들을 우리는 삶의 화창한 날이 오자마자 손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들이 낡았다는 이유로, 혹은 더 이상 내게 줄 '그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외로움의 길가에 방치해 두고 떠난다.

버려진 우산은 말하지 않는다. 비바람에 살대가 꺾이고 비닐이 찢기면서도 주인을 지키려 했던 그 치열한 사투를 구태여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빗방울을 응시할 뿐이다.

우리는 그 고요한 유기를 목격하면서도 '어차피 싼 것이니까', '다시 사면 되니까'라는 편리한 자기합리화로 양심의 가책을 가볍게 문지른다.

소중함의 기준이 존재의 본질이 아닌 당장의 '편익'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 또한 언제든 누군가에게 망가진 우산처럼 버려질 수 있는 잠재적 폐기물에 불과하다.

오늘 내가 무심히 지나친 저 꺾인 우산은 어쩌면 내일의 내가 처할 서글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관계의 가치는 비가 올 때 우산을 함께 쓰는 것이 아니라, 비가 그친 뒤에도 젖은 우산을 정성껏 털어 말려 다시 제자리에 두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길모퉁이마다 쌓여가는 저 일회용 생명들의 무덤은 우리 사회의 온도가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지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사고, 너무 쉽게 쓰며, 그보다 더 쉽게 사람을 버리는 '일회용 애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젖어 있는 보도 위에서 나는 내 손에 들린 우산을 다시 한번 고쳐 쥔다.

비는 그쳤지만, 나를 지켜주었던 이 투명한 방패가 마를 때까지 기다려주는 최소한의 예우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품위가 아닐까 생각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라, 비가 그친 뒤 가장 헌신적이었던 존재를 길가에 내팽개치는는 무심한 홀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