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증, 목에 걸린 세련된 개목줄

소속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결박

by 풍운

매일 아침, 지하철역과 빌딩 숲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목에 무언가를 걸고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반듯하게 다려진 셔츠 위로, 혹은 단정한 재킷 위로 툭 떨어지는 그것. 바로 사원증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직장인의 훈장이자 소속감의 증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빳빳한 플라스틱 카드가 매달린 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묘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과연 당당한 나를 증명하는 서류인가, 아니면 주인에게 매여 있음을 알리는 세련된 개목줄인가.

우리는 그 줄을 목에 거는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과 자유를 일정 금액의 월급과 맞바꾼다. 사원증은 빌딩의 닫힌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구속의 상징이 된다. 주인은 사원증이라는 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우리를 책상 앞으로 불러 모으고, 때로는 그 줄을 흔들며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라고 재촉한다.

이 목줄은 아주 영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예전의 목줄이 가죽이나 쇠사슬처럼 무겁고 투박했다면, 현대의 목줄은 가볍고 화려하다. 회사의 로고가 예쁘게 박혀 있고, 때로는 복지라는 이름의 간식과 커피 향이 그 줄 끝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줄이 목을 조여올 때조차 이것이 나를 지켜주는 안전장치라고 착각하곤 한다. 줄이 길어지면 자유를 얻었다고 좋아하고, 줄이 짧아지면 더 열심히 일해서 줄의 길이를 늘리려 애쓴다. 결국 목에 줄이 걸려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잊은 채 말이다.

더 서글픈 것은 이 목줄을 스스로 목에 걸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이 줄을 얻지 못해 밤잠을 설치고, 누군가는 더 화려한 로고가 박힌 줄으로 갈아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목줄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덧 스스로 길들여진 존재가 되어, 목줄이 없는 자유보다 목줄이 주는 안정된 사료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회사는 우리에게 사원증을 내주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그 자부심의 유효기간은 회사가 그 줄을 놓는 순간 끝이 난다.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구조조정이라는 가위로 그 줄이 잘려 나가는 날, 목에 선명하게 남은 줄자국을 보며 우리는 깨닫는다. 내가 지켜온 것이 나의 가치가 아니라, 단지 누군가에게 잘 관리된 부속품이었음을 말이다.

물론 노동은 신성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기꺼이 목줄을 감수하는 삶은 숭고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목에 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이것은 나를 증명하는 얼굴이 아니라, 나를 통제하는 선이다. 청춘을 바쳐 닦아온 그 빳빳한 사원증이 내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원증을 벗어 던졌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목줄 끝에 매달린 밥그릇에 영혼을 다 내어주지 말고, 줄이 당겨질 때마다 내 안의 존엄이 깎여 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하얀 와이셔츠 위로 늘어진 그 검은 줄이, 당신의 사유마저 묶어두게 내버려 두지 마라.


로고가 박힌 빳빳한 줄은 소속이라는 안락함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주인 없는 광야를 달릴 수 있는 인간의 본능과 자유를 조용히 거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