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매일 밤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안식이라는 이름표를 단 기만적인 임종 연습

by 풍운

우리는 매일 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무덤을 향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푹신한 매트리스, 체온을 머금은 거위 털 이불, 그리고 머리를 부드럽게 받쳐주는 베개. 우리는 그곳을 '침대'라 부르며 안식을 꿈꾸지만, 실상은 의식을 반납하고 자아를 지워내는 '작은 죽음'의 의식을 치르는 것에 불과하다. 잠드는 순간, 우리는 모든 사회적 지위와 욕망, 기억의 연결고리를 끊고 암흑의 심연 속으로 추락한다.

침대는 생과 사의 경계가 가장 희미해지는 전장이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 순간, 당신이 가진 재산도, 명예도, 지독하게 괴롭히던 고민도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8시간 동안 당신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된다. 이 기묘한 유예된 죽음은 우리에게 매일 밤 경고를 던진다. 당신의 생(生)은 영원하지 않으며, 이 화려한 일상의 무대 역시 언제든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서늘한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 장엄한 소멸의 예행연습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다. 우리는 내일 아침이면 당연히 다시 눈을 뜰 것이라는 오만한 확신 속에 잠자리에 든다. 스마트폰을 보며 자극적인 정보의 찌꺼기를 뇌에 집어넣다가 지쳐 잠드는 행위는, 신성한 임종 연습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다. 죽음을 망각한 안식은 그저 가축의 휴식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밤 죽음을 연습하면서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삶의 끝을 성찰하지 않는 태도는 지독한 역설이다.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 그 고요한 정적은 당신의 삶을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소음이 사라진 공간에서 당신은 비로소 가면을 벗은 자신의 민낯과 마주한다. 오늘 하루 당신이 뱉은 말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그저 숫자를 쫓아 허둥대며 영혼을 갉아먹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침대는 휴식의 공간이기 전에, 하루의 위선을 심판받는 가혹한 재판소여야 한다.

죽음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밤 우리 곁을 찾아오는 가장 친밀한 동반자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다시 한번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조건부 복권에 가깝다. 우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내딛는 그 찰나의 순간에 감격해야 한다. 어제의 내가 죽고 오늘의 내가 다시 태어났음을 인지할 때, 우리의 하루는 비로소 '생존'이 아닌 '삶'의 무게를 갖게 된다.

당신의 침실은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된 전시장이 아니라, 가장 겸허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수도원이 되어야 한다. 내일이라는 보장 없는 생의 마지노선 위에서, 당신은 오늘 무엇을 남기고 눈을 감으려 하는가. 안락함에 취해 생의 유한함을 잊는 순간, 침대는 당신의 영혼을 가두는 안락사 장치로 변해버릴 것이다.

매일 밤 무덤으로 들어가는 그 용기로, 내일 아침의 부활을 준비하라. 죽음의 연습이 깊을수록, 당신의 생은 더 선명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안락한 침대는 당신의 지친 몸을 뉘는 곳인가, 아니면 당신이 잠시 잊고 지낸 죽음의 향기를 맡는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