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걸친 것은 패션인가, 잘 가공된 사체인가

무덤 위에서 축제를 벌이는 우아한 포식자들

by 풍운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공들여 '죽음'을 치장한다. 어깨에 걸친 부드러운 캐시미어, 발끝을 감싼 매끄러운 소가죽, 그리고 목을 포근하게 감싸는 오리털 파카까지. 그것들은 백화점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럭셔리'와 '스타일'이라는 세련된 이름표를 달고 전시되지만, 그 본질은 단 하나다. 차갑게 식어버린 생명의 흔적, 즉 '사체'의 파편들이다.

현대인의 우아함은 지독하게 기만적이다. 우리는 피 냄새 진동하는 도살장의 풍경은 혐오하면서도, 그곳에서 건져 올려 무두질하고 색을 입힌 가죽 가방에는 열광한다. 생명이 비명 속에 뜯겨나간 자리를 명품 로고로 덮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잔인한 살육의 결과물이 아니라 누구나 선망하는 신분의 상징으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소비하면서도, 그것이 비말처럼 흩뿌려진 비극의 결과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우아하게 커피를 마신다.

이것은 비단 옷차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식탁 또한 거대한 무덤의 연장선이다. 마트의 깔끔한 스티로폼 트레이 위에 담긴 선홍빛 살점들은 한때 숨을 쉬고 온기를 나누던 생명체였다는 사실을 철저히 지워버린다. '고기'라는 편리한 단어는 '생명'이라는 무거운 가치를 휘발시킨다. 우리는 포장지에 적힌 가격표를 보며 가성비를 따질 뿐, 그 생명이 지불한 '존엄의 가격'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우리는 왜 이토록 타자의 고통에 둔감한 포식자가 되었는가. 그것은 자본이 설계한 '분리된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의 비참함은 철저히 가려지고, 소비의 화려함만 극대화된 세상에서 우리는 죄책감 없이 타자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타자의 살점을 씹는다. 주방과 안방, 옷장은 사실 가장 깨끗하게 닦여진 무덤이나 다름없지만, 우리는 그 위에서 태연하게 일상의 축제를 벌인다.

진정한 인간의 품격은 자신이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가 걸친 가방이 한때 누군가의 살갗이었음을, 내가 먹는 성찬이 누군가의 마지막 숨결이었음을 인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오만한 포식자의 지위에서 내려와 생명의 연대를 고민할 수 있다.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세련된 학대이며, 망각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도살이다.

당신이 오늘 선택한 그 우아한 외투는 누군가의 체온을 빼앗아 만든 결과물이다. 그 무게를 느낄 수 없다면 당신의 감각은 이미 자본의 마취제에 중독된 것이다. 화려한 껍데기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을 마주하라. 우리는 과연 문명인인가, 아니면 그저 사체를 예쁘게 포장해 즐기는 진화된 야수일 뿐인가.

껍데기를 숭배하는 시대, 우리는 알맹이가 사라진 죽음의 잔해들을 걸치고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 미소가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이 거대한 살육의 공모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거울 속에서 마주하는 그 화려한 자태는, 과연 당신의 영혼인가 아니면 당신이 약탈한 생명들의 장례 행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