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환상, 비루한 일상을 잊게 하는 마약성 진통제

견문을 넓힌다는 명분 뒤에 숨겨진 서글픈 현실 도피

by 풍운

항구를 떠나 끝없는 수평선을 향해 미끄러지는 거대한 갑판 위에 서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멀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그 푸른 심연 위에서 일상의 모든 피로와 권태를 파도 속에 던져버리고 비로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의 정적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견문을 넓히고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고결한 항해에 올랐다는 환상에 젖어든다. 하지만 그 화려한 승선권 한 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탐험이라기보다 비루하고 팍팍한 현실로부터 잠시 눈을 돌리기 위해 사들인 고가의 마약성 진통제에 가깝다.

우리는 왜 이토록 바다 너머로의 도피에 집착하는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마모되고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반복되는 노동과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영혼이 메마를 때, 자본은 우리에게 바다 위의 낙원이라는 달콤한 환상을 판다. 일 년 내내 아끼고 모은 돈을 며칠의 휴가에 쏟아부으며 우리는 잠시나마 자유를 항해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사실 다음 일 년의 노역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에게 주입하는 강력한 마취제일 뿐이다. 견문을 넓힌다는 핑계는 우리가 이 고비용의 도피를 정당화하기 위해 덧입힌 얇디얇은 명분이다.

파도 소리에 취해 갑판 위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얼마나 인위적인가. 호화로운 연회장 앞에 줄을 서고, 소셜 네트워크에 전시할 바다의 색깔을 보정하기 위해 화면을 가로챈다. 우리는 낯선 파도의 넘실거림을 가슴으로 느끼기보다, 내가 이 특별한 고립 속에 머물고 있음을 증명하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타인의 삶이 닿지 않는 해상 위에서 우리는 자신의 일상이 가진 남루함을 잊으려 애쓰지만, 그 기억은 뭍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휘발되어 버린다. 진정한 성찰은 자리를 옮기는 데 있지 않고 마음을 돌보는 데 있음에도, 우리는 육지와의 물리적 단절이 곧 정신적 성숙이라 믿는 기만에 빠져 있다.

더 서글픈 것은 항해가 끝난 뒤의 허탈함이다. 배가 다시 항구의 부두에 밧줄을 매는 순간, 마취 기운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더 잔혹해진 현실이 우리를 기다린다. 며칠간의 화려한 일탈을 위해 저당 잡힌 통장의 잔고와 밀려든 업무는, 여행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오히려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해결하기보다, '나중에 또 떠나야지'라는 막연한 보상 심리로 현실의 부조리를 견디게 만드는 통제 기제로 작동한다. 자본은 우리가 시스템에 저항하지 않도록 주기적인 탈출구를 제공하며 우리를 길들인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떠나온 것은 낯선 세계인가, 아니면 마주하기 두려운 나의 초라한 현실인가. 지도 위의 경로를 넓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발이 딛고 있는 일상이라는 대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견뎌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바다 위에서 본 아름다운 석양은 내 방 창가로 비치는 노을보다 고귀하지 않으며, 이국 항구의 친절한 낯선 이는 내 곁의 사람보다 소중하지 않다. 장소의 이동만으로 삶의 본질이 바뀔 것이라는 환상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고비용의 도피를 멈추고 진짜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며 떠나라고 재촉하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머무는 그 자리를 나만의 낙원으로 가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비싼 진통제에 의지해 고통을 잊기보다, 일상의 비루함 속에 숨겨진 작은 기쁨들을 발굴하는 성실함이 우리를 구원한다. 여행 가방 속에 담아온 기념품들이 먼지 속에 묻히듯, 소비로 산 감동은 유통기한이 짧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며칠간의 화려한 이탈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며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단단한 일상의 근육이다.


낯선 풍경을 탐닉하며 일시적인 안도를 구하기보다, 도망치고 싶은 자신의 평범한 하루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것이 진정한 생의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