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착각에 대하여
이 당혹스러운 가정은 우리가 가진 '청결'과 '상식'의 본질이 얼마나 위태로운 모래성 위에 지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오물은 혐오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천만 마리의 세균은 '주방'이라는 이름의 안도감 속에 방치한다. 장소가 주는 고정관념이 본질적인 사실을 가려버리는 것이다. 겉보기에 깨끗해 보이는 싱크대 볼 위에서 우리는 정작 세균의 잔치를 벌이며 그것을 '위생'이라 부른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닮아 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청결'의 궤도 안에 머물러 있다는 안도감에 취해, 정작 그 안에서 썩어가는 본질은 외면하곤 한다. 번듯한 직장, 예의 바른 말투, 깔끔한 차림새라는 '주방' 같은 외피만 갖추고 있다면, 그 속이 어떤 위선과 오물로 가득 차 있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오히려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변기' 같은 삶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정작 더 지저분한 손으로 자신의 그릇을 닦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소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것인가. 음식을 씻으면 주방이고, 배설을 하면 화장실이라는 구분은 인간이 만든 편리한 칸막이일 뿐이다. 본질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와 관리의 태도에 있다. 변기에서 설거지를 할 수 없듯, 싱크대가 변기보다 더럽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가 매달려온 상식의 체계는 붕괴된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사각지대였음을 고백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름표가 아니다. '주방'이라는 이름이 청결을 보장해주지 않듯, 우리가 속한 집단이나 지위가 우리의 고결함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깨끗해야 한다고 믿는 곳일수록, 가장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치는 곳일수록 더 깊은 성찰의 빗자루질이 필요하다. 맹목적인 상식에 기댄 안도감은 우리를 서서히 오염시키고, 결국 본질적인 판단력마저 마비시킨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주방이라는 환상 속에서 세균 번식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비록 남들이 기피하는 곳일지라도 본질을 직시하며 나만의 청결을 유지하고 있는가. 눈에 보이는 구분선에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깨끗한 척하는 위선자가 될 뿐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공간의 정의를 의심하라. 익숙한 풍경이 주는 안락함이 당신의 눈을 멀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싱크대와 변기의 순위가 뒤바뀌는 찰나의 불쾌함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본질을 되찾게 해줄 가장 선명한 각성제다.
이름표를 떼어낸 진실 앞에서, 당신이 닦고 있는 것은 그릇인가 아니면 그저 안도하고 싶은 당신의 허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