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는 공간의 품격과 숨겨진 문턱

반응의 통로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날 사유의 진정성에 대하여

by 풍운

국내에서 브런치는 단순한 글쓰기 도구를 넘어선 위상을 지닌다.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보며 신뢰를 느끼듯 브런치를 글쟁이들의 명품 플랫폼이라 인식한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는 시스템은 이곳을 다른 매체와 차별화하는 유일무이한 특징이다. 작가가 된 이든 지망하는 이든 브런치를 특별하게 여기는 분위기는 뚜렷하며, 이곳에서 발행되는 글은 선택받은 자의 사유라는 권위를 획득한다. 하지만 명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품격 뒤에는 글쓰기의 본질을 묻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도사린다. 작가를 위한 이 성소에 배치된 소통의 장치들은 과연 작가의 사유를 돕고 있는가, 아니면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브런치를 찾는 작가들이 처음부터 타인의 반응을 갈구하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내면에 고인 문장들을 정직하게 쏟아내고 기록하기 위해 이 정돈된 공간을 선택한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이기 이전에 자신을 증명하고 치유하는 고독한 의식이다. 그러나 플랫폼 레이아웃상 배치된 '라이킷'과 '댓글' 창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독자들의 반응을 유도한다. 플랫폼이 소통의 통로를 열어두었기에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라이킷을 누르고 짧은 감상을 남긴다. 이러한 장치들이 없었더라면 작가는 오로지 자신의 글과 독자의 내면이 직접 맞부딪치는 경험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작가들을 반응의 굴레로 밀어 넣는 것은 작가의 욕망이 아니라, 플랫폼이 설계한 구조적 환경일 수 있다.

만약 브런치에 라이킷과 댓글 기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창구조차 없었더라면 브런치의 가치는 지금보다 높게 평가받았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인정을 수치로 확인하는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글의 본질과 작가의 진심만이 남기 때문이다. 명품의 가치가 화려한 장식이 아닌 견고한 내실에서 오듯, 작가의 공간 역시 반응을 유도하는 기능을 걷어냈을 때 사유의 진정성이 선명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소통의 편리함이 역설적으로 작가가 누려야 할 사유의 깊이를 얕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섬세하게 되짚어보아야 한다. 숫자로 환산되는 공감은 때로 문장이 지닌 고유한 본질을 가리는 법이다.

작가들이 반응을 갈구하지 않음에도 플랫폼의 구조가 소통을 강제하는 형국은 작가에게 심리적 부채를 안긴다. 내가 쓴 글이 라이킷이라는 숫자로 치환되어 전시될 때, 작가는 본능적으로 그 숫자의 무게에서 자유롭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담담하려 애써도 레이아웃이 보여주는 지표들은 작가의 시선을 자꾸만 내면이 아닌 외부로 돌리게 만든다. 브런치가 최고의 글쟁이들을 위한 명품 플랫폼으로 남고자 한다면, 작가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되어 기록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반응이 권력이 되는 시대에 소통의 장치마저 과감히 걷어내고 작가의 내면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공간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작가의 성소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이 공간의 품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소통이 작가의 문장을 풍요롭게 하는지, 아니면 플랫폼이 설계한 관성적인 행위에 불과한지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브런치를 향한 동경이 화려한 껍데기에 머물지 않으려면 플랫폼은 작가가 자신의 영혼과 대면하는 침묵의 시간을 훼방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을 유도하는 시스템적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서 작가는 비로소 장식품이 아닌 살아있는 문장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명품은 누군가의 찬사 없이도 스스로 빛을 내는 법이며, 작가의 글 또한 플랫폼의 장치 없이도 독자의 가슴에 가닿아야 한다.


타인의 시선이 개입하는 라이킷과 사유의 여백을 침범하는 댓글창을 과감히 걷어낸 자리에 남을 적막이야말로 작가가 오롯이 자신의 영혼과 마주하여 진실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성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