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평온 뒤에 숨겨진 무언의 공범자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부조리와 마주한다. 누군가의 정당하지 못한 이익 취득, 부당한 권력의 행사, 혹은 약자를 향한 은밀한 폭력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의 양심은 작게 요동친다. 하지만 그 찰나의 흔들림을 잠재우는 것은 언제나 '평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이다. 내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 깨어질 공동체의 안녕, 그리고 그 대가로 내가 짊어져야 할 피곤한 갈등을 떠올리며 우리는 슬그머니 눈을 감는다. 이러한 침묵의 동조는 단순히 갈등을 피하려는 소극적 태도를 넘어, 부조리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가장 적극적인 협력 행위다.
이 기묘한 침묵의 저변에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주의와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는 실용주의가 맞물려 있다. 사람들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자신의 안락한 일상을 지켜내는 것을 훨씬 상위의 가치로 둔다. 부조리를 향해 입을 여는 순간, 평화롭던 수면 위로 파문이 일고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지 모른다는 공포가 목소리를 억누른다. 우리는 스스로를 중립적인 관찰자라고 기만하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하는 한 부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악의 승리를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경구처럼, 우리의 조용한 외면은 부조리를 정당화하는 거대한 토양이 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러한 침묵이 반복될수록 우리의 감각이 마비된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던 불의의 장면들도, 한 번 두 번 눈을 감다 보면 점차 당연한 풍경으로 수용된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체념 섞인 합리화는 우리 영혼을 잠식하고, 결국 우리는 부조리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정서적 불구 상태에 이른다. 가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지불한 대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인간성이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사회가 내부로부터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이유는, 그 고요함이 진실된 합의가 아닌 억눌린 침묵의 퇴적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침묵이 결코 중립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부조리를 목격하고도 입을 닫는 것은 그 부조리의 편에 서기로 결정한 것과 다름없다. 진정한 평화는 부조리를 덮어둠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치열한 소통과 충돌을 거친 후에 찾아오는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타인을 위한 희생 이전에, 나 자신의 양심이 부패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최소한의 방어 기제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거대한 침묵의 벽에 균열을 낼 때, 우리 사회는 비겁한 평온을 깨고 건강한 생동감을 회복할 수 있다.
결국 침묵의 동조를 끊어내는 것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주체적인 용기를 깨우는 일이다. 대단한 혁명가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정직함, 그리고 그 말로 인해 벌어질 작은 파동을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우리가 눈을 감는 순간 사라지는 것은 타인의 고통만이 아니라, 불의에 맞설 수 있었던 나 자신의 존엄함이기도 하다. 비겁한 평화의 그늘에서 걸어 나와 진실의 햇볕 아래 설 때, 우리는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된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비겁한 평온을 지키기 위해 감았던 눈을 뜨고 부조리의 민낯을 직시할 때, 우리는 침묵의 공범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영혼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