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에서 멈춘 시간

by 풍운

병원 복도는 이상하게도 늘 같은 색을 하고 있습니다. 희고 차가운 벽, 반질반질한 바닥,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의 구조. 그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 시간만 그 복도 한가운데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의사에게서 설명을 듣고 나왔을 때, 저는 곧장 의자에 앉지 못했습니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무언가를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습니다. 의사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문장은 크지도, 날카롭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 문장이 복도 전체를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준비라는 단어가 그렇게 무겁게 들릴 줄은 몰랐습니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의미를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복도는 평소처럼 분주했습니다. 간호사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보호자들이 전화를 붙잡고 서 있었으며, 휠체어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귀에는 그 모든 소리가 멀게 들렸습니다. 세상은 움직이고 있는데, 저만 제자리에서 멈춰 선 느낌이었습니다.

병원 복도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습니다. 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르려 했습니다. 방금 들은 말을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해보려 했지만, 문장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위중합니다.’ ‘가능성은 낮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이어서 설명했던 말들이 서로 겹치며 하나의 메아리처럼 번졌습니다. 이해하려 할수록 더 흐릿해졌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제 삶의 문장을 갑자기 잘라내고, 다음 장을 건너뛴 것처럼.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어때?”라는 짧은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답장을 쓰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문장은 너무 크고, 너무 무거워서 손가락 끝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반복되었습니다. 의료진이 병실을 오가고, 보호자들이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저는 그 문을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대신 숨 쉬어줄 수도 없는 자리에서, 저는 그저 기다리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몇 분이 흘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의 시간은 조금 전 그 문장 앞에서 그대로 멈춰 있었습니다. ‘마음의 준비.’ 그 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들렸습니다. 무엇이 끝날 것인지, 무엇이 시작될 것인지 모른 채로 서 있는 상태. 복도는 길게 이어져 있었지만, 저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시간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내일도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평범한 하루가, 한 문장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병원 복도는 그 불확실함을 가장 냉정하게 드러내는 공간이었습니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좋든 나쁘든, 이제는 그 문장 이후의 시간을 살아야 했습니다.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느리고, 무겁고, 낯설었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멈춘 시간은 아직도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어떤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문장을 떠올립니다. 삶은 생각보다 쉽게 균열이 가고, 우리는 그 균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 복도는 지금도 같은 색으로 서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걷고, 누군가는 멈춰 서 있겠지요. 그리고 또 누군가는, 저처럼 한 문장 앞에서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날 멈춘 것은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저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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