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는 마음, 길가에 세워진 돌탑의 기도

서로의 무게를 견디며 쌓아 올린, 이름 없는 이들의 다정한 연대

by 풍운

산길 모퉁이나 오래된 사찰 어귀, 혹은 이름 모를 길가를 걷다 보면 누군가 정성껏 쌓아 올린 작은 돌탑들을 마주하곤 한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돌멩이들이지만, 그것들이 서로의 몸을 의지하며 위태롭게 층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누가 처음 이 돌을 놓았는지, 어떤 사연을 담아 그 위에 또 다른 돌을 보탰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투박한 돌덩이들 사이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은, 분명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이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고단한 삶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돌탑은 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우면서도 가장 단단한 건축물이다.

접착제 하나 없이 오직 돌과 돌 사이의 균형만으로 버티고 있는 저 탑은, 바람이 불거나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무너져 내릴 듯 불안해 보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돌탑은 비바람을 견디고 계절을 넘기며 그 자리를 지켜낸다.

위에서 아래를 누르는 돌의 무게가 아래에서 받쳐주는 돌의 단단함과 정확히 맞닿을 때,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평형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 역시 나 혼자의 힘보다는, 누군가 내 어깨 위에 얹어준 위로와 내가 누군가를 위해 내어준 든든한 등줄기가 맞물려 지탱되는 법이다.

길가에 돌을 하나 얹는 행위는 타인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마음을 슬쩍 보태는, 아주 조용하고도 깊은 연대의 방식이다.

먼저 다녀간 이의 소망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돌 하나를 그 위에 올릴 때,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타인과 비로소 동행하게 된다.

"당신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그리고 나의 소박한 소망도 그 곁에서 함께 숨 쉴 수 있길" 빌며 올린 돌 하나는, 삭막한 세상을 견디게 하는 가장 작고도 강력한 응원이 된다.

그래서 돌탑은 혼자 쌓는 탑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온기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공동의 기도문'이다.

돌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각의 모양을 한 돌들이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고 있음을 발견한다.

매끄럽고 둥근 돌은 울퉁불퉁하고 모난 돌을 품어주고, 작고 얇은 조각돌은 커다란 돌 사이의 흔들림을 막아주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완벽하게 잘난 돌들만 모여서는 결코 높은 탑을 쌓을 수 없다.

오히려 서로의 모난 구석을 인정하고, 그 틈새에 기꺼이 자신을 밀어 넣는 이름 없는 조각돌들이 있기에 돌탑은 하늘을 향해 더 높이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이처럼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다정한 배려가 쌓일 때,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희망의 탑을 세울 수 있다.

때로는 심술궂은 바람이나 무심한 손길에 돌탑이 허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너진 돌탑 앞을 지나는 누군가는 다시 허리를 굽혀 흩어진 돌들을 줍고, 처음보다 더 정성스러운 손길로 탑을 다시 세운다.

한 번 무너졌던 경험이 있기에, 다시 쌓는 탑은 이전보다 더 견고하고 단단한 균형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우리의 꿈과 사랑이 무너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돌 하나를 줍는 용기, 그리고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모여 우리는 이전보다 더 성숙한 생의 탑을 완성해 나간다.

누군가는 돌탑을 보며 기복신앙이라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그 돌덩이를 얹는 찰나의 진심은 그 어떤 거창한 종교 의식보다 숭고하다.

무릎 높이의 작은 탑일지라도 그 안에는 한 사람의 밤잠을 설쳤던 걱정과,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의 눈물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이 켜켜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가에서 그 수많은 인생의 조각들을 마주하며, 나 혼자만이 이 고단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동질감을 얻는다.

돌탑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가장 꼭대기의 돌이 잘나서가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묵묵히 버티고 있는 기초석들 덕분이다.

우리 삶의 터전 역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라는 바닥돌 위에 세워져 있다.

길가의 돌탑은 우리에게 거창한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태산처럼 거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슬픔 위에 나의 작은 기쁨을 보태고 누군가의 절망 아래 나의 작은 희망을 받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돌탑 위에 자신의 돌 하나를 얹으며 성장하고, 또 누군가가 얹어줄 마지막 돌 하나를 기다리며 오늘을 견뎌낸다.

이제 길을 걷다 작은 돌탑을 만나면,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에 구르는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들어보자.

그리고 앞서간 이들의 간절함이 다치지 않게,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무게로 나의 마음을 얹어보자.

그 작은 울림이 모여 언젠가는 이 차가운 길 위에도 따뜻한 온기가 가득한 기도의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결국 삶이란 나 혼자 높이 솟아오르는 경쟁이 아니라, 앞선 이의 간절함이 무너지지 않게 내 마음의 무게를 조심스레 보태어 함께 흔들리며 버티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