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잡을 손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어느 남겨진 마음
해질녘의 놀이터는 낮 동안의 소란을 뒤로하고 하나둘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빈자리, 미끄럼틀 아래 차가운 모래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노란 털장갑 한 짝을 발견한다.
방금 전까지 꼬마 주인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따뜻하게 감싸며 눈싸움을 돕던 이 작은 장갑은, 지금 주인도 모르는 새 이곳에 홀로 남아 저물어가는 노을을 묵묵히 마주하고 있다.
누군가는 제 짝을 잃어버린 쓸모없는 물건이라며 혀를 차고 지나가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본 장갑의 모습은 슬프다기보다 오히려 씩씩하게 주인을 기다리는 파수꾼처럼 보인다.
장갑은 본래 두 개가 한 쌍이어야 제 구실을 한다지만, 홀로 남겨진 이 장갑은 지금 자신의 '짝'보다 더 중요한 미션을 수행 중이다.
그것은 바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의 발소리를 기억하며, 이곳이 우리가 함께 행복했던 장소였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찬바람이 불어와 털실 사이사이를 사정없이 파고들어도 장갑은 결코 몸을 웅크리지 않는다.
자신을 찾아 허겁지겁 달려올 주인이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제 몸의 가장 선명한 노란빛을 한껏 뽐내며 모래 위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다.
그것은 버려진 자의 체념이 아니라, 다시 만날 날을 확신하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거룩한 인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것들을 잊고 살지만, 때때로 그 '잊힌 것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정직하게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곤 한다.
어릴 적 쓰던 낡은 일기장, 서랍 속 깊이 잠든 빛바랜 편지, 혹은 한때 세상을 다 얻은 듯 간절했던 꿈들까지.
그것들은 주인이 자신을 잊었다고 해서 원망하거나 서둘러 사라지지 않고, 우리가 다시 돌아와 손을 내밀 때까지 묵묵히 제 온기를 보존하며 그 자리를 지켜낸다.
놀이터에 남겨진 저 장갑처럼, 세상의 모든 '남겨진 것들'은 사실 버려진 게 아니라 우리에게 다시 돌아와 온기를 나눌 기회를 주고 있는 다정한 배려인지도 모른다.
장갑의 주인은 아마 따뜻한 집 방 안에 도착해서야 한쪽 손이 유난히 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을 것이다.
내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시 놀이터로 달려올 꼬마 주인의 가쁜 숨소리를 상상하며 장갑은 차가운 밤이슬과 서늘한 달빛을 기꺼이 견뎌낸다.
다시 자신을 집어 들어 툭툭 털어주고,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손가락을 다시 제 품 안으로 쑥 집어넣어 줄 그 환희의 순간을 기다리는 장갑의 마음은 이미 다시 뜨거워져 있다.
기다림이란 지루한 고통이나 수동적인 멈춤이 아니라, 다시 만날 사람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사수하는 가장 능동적이고도 치열한 사랑의 방식이다.
우리의 관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느껴 마음의 문을 닫아걸기보다, 잠시 나를 잊고 떠난 그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내 마음 한구석을 노란 장갑처럼 밝게 켜두는 여유가 필요하다.
내가 먼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기로 결심한다면, 그 어떤 찰나의 상실도 영원한 이별이 되지 않는다.
놀이터의 어둠이 깊어질수록 가로등 불빛 아래 장갑의 실루엣은 더욱 선명해지고, 그 씩씩한 기다림은 우리에게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
길을 가다 무언가 홀로 남겨진 것을 보거든, 그것의 외로움보다는 그것이 품고 있을 희망을 먼저 읽어주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놀이터의 구석진 자리에서 오직 주인의 온기만을 그리워하며 밤을 지새울 저 작은 거인은, 안달복달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소박하고도 엄중하게 가르쳐준다.
진짜 따뜻한 것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온기가 아니라,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끝까지 간직해낸 마음의 온도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노란 장갑 같은 존재가 되기를 꿈꾸며, 해질녘 놀이터의 그 예쁜 기다림을 가슴 한 켠에 조용히 담아본다.
내일 아침, 다시 이곳으로 달려올 소녀의 발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올 때, 장갑은 밤새 품어온 차가운 이슬을 툭툭 털어내며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품을 다시 내어줄 준비를 마칠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저 노란 장갑의 밤샘이, 오늘 밤 유난히 시린 누군가의 마음 위로 따뜻한 위로의 덧신이 되어 내려앉기를 소망해본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텅 빈 자리에 고이는 정적에 무뎌지는 과정이 아니라, 남겨진 자리에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나를 가장 선명한 온도로 가꾸며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