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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사라 Jan 20. 2023

오늘의 유언 #1 [2023년 1월 19일]

매달 혹은 더 자주 유언장을 쓰기로 했다.

- 유언에 대한 서론


유언이란 사전에서는 ‘죽음에 이르러 말을 남김. 또는 그 말.’, ‘자기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을 발생시킬 것을 목적으로 하여 행하는 단독의 의사 표시. 만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유언의 방식으로는 자필 증서, 녹음, 공정 증서, 비밀 증서, 구수(口授) 증서 따위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낭만적인 게 좋다. 그러나 죽음까지 낭만적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만큼은 조금 더 낭만적인 감성이고 싶다. 


나무위키를 보니 유언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구분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 구분되어야 한다고 한다. 나도 동감한다. 


유언은 법률적으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5가지만 인정된다. 형식에 맞게 유언서를 만들어도, 그것이 법률 효과를 발생시키는 내용이 아니라면 유언의 상대방에게 어떤 법적 강요를 할 수 없다. 또한 유언이 여러 개가 있을 경우 가장 마지막 날짜에 만들어진 유언을 따른다.


이렇게 보니 유언은 사회적인 게 아니라 굉장히 인간적인 거다. 죽기 전에 남기는 말. 그것은 대체로 가족과 지인 등 주변 사람을 향한다. 


그렇다. 나도 법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거다. 무엇이든, 나에 대해서, 그들에 대해서,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마음에 대해서.



- 요즘.


얼마 전 유전자 검사를 했다. 생물학적 가족을 찾기 위한 검사는 아니고, 유전자 변이 등 질병에 대한 확률을 검사하는 거였다. 대부분 암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안심되는 결과도 있고, 염려되는 결과도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다행으로 여긴 것은 바로 ‘치매’ 관련 정보였다. 걱정할만한 척도가 아니었다. 물론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지만, 다행이었다. 


유전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장기는 자주 암 검사를 하면서 지켜보면 된다. 그래서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죽기 전에, 혹은 늙어서.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나의 상황을 부담해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부모는 나보다 더 쇠약하거나 먼저 돌아가실 확률이 높고, 하나밖에 없는 형제인 언니는 별도의 가정이 있고, 나는 남편이나 자식이 있을지 없을지 아직 모른다. 가족 외에 나에게 책임감을 느낄 사람은 없을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암을 포함해 다양한 질병 수술비 등을 보장받는 보험을 재정비했다. 아플 때 힘든 이유 중 큰 부분은 경제적인 이유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을 만날 수도 있고.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 관련 사회보장제도가 잘돼 있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100% 제도적으로 도움받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암이나 기타 질병이 꼭 죽음과 가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현대의학이 발달했고, 사회보장제도의 발달로 조금만 아파도 쉽게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질병에서 목숨은 자유로울지라도,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되거나 사망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살면서 모든 분야의 한계 즉, 죽음에 대하여 고민하고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


나의 죽음은 언제, 어떻게, 왜 올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죽음은 모두에게 필연적이라는 사실과 연속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많지 않지만, 나는 여러 번 죽음을 겪었다. 나는 남겨지고, 그들은 떠났다. 그게 무거운 기분이 드는 수준이거나,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되기도 했다. 


나는 정확히 10년 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흐르고 나서야 유언장을 쓰는 건, 그만큼 경황이 없었던 게 아닐까. 죽음에 대해서. 이 이야기는 다음 유언장에서 쓰도록 이어지도록. 




-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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