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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사라 Aug 01. 2023

만약 그때 결혼했더라면. 그리고 싱글로 나이든다면.

유언장 번외

본가에 간 어느날. 아부지는 지인이 "작은 딸도 결혼 해야죠"라고 했단다. 듣고 나니 딱히 할말이 없었다. "지금"은 결혼 할 생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일단 만나는 사람도 없는 걸?


현재 서른의 싱글 여성. 나에게도 결혼에 가까워졌던 시기가 있었다. 즉, "결혼할 뻔" 했다. 


어언~ 옛날... 나도 연애를 했더랜다. 상대와는 이십대 초반부터 이십대 중반까지 3년가량 연애했다. 내 리즈 시절이기도 하다!


아무튼 연애하면서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겪으면서 열심히(?) 연애했다. 그러다 상대방(전남친)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자 하는 마음을 내비췄다. 그때도 묘하게, 양가감정이 든 거 같다. 나를 진지하게 여기는 그에게 더 깊은 마음을 느끼면서 좋은 감정이 들었고, 또 진짜 (최종적으로 우리가) 결혼을 할까, 라는 의구심 아닌 의구심도 들었다.


그 뒤로는 결혼을 향해 가는 연인 같았다. 전남친 어머님을 만나면 항상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집에서도 전남친은 사위가 될 거로 인정했다. 그런 분위기에 비해 나는 결혼하는 거에 나이브해서 엄청 고민하거나, 그러지 않았던 거 같다. 처음 맛보는 열대과일을 보면서 "맛있겠지, 뭐" 이런 느낌?


그런데 나는 왜 결혼하려고 했을까?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자면, 우선 전남친과 생활양식이 대강 맞았다. 위생청결 수준이라든가, 사적 시간 존중이라든가, 뭐 서로 수위가 비슷해서 잘 맞았다. 그래서 같이 살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그는 성실한 편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었지만, 성실하게 살았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나는 남자의 재산에 가치를 갖는 거 보다(허황된 기대라고 생각), 성실함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갖춰진 능력 보다, 삶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능력이 위기 상황에서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성격도 괜찮았다. 적당히 사회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나쁜 상황에서 집착하지 않았다.


일례로, 내가 전남친의 차를 빌려서 끌고 나갔다가 사고가 났는데, 그는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참고로 차는 폐차됐고, 내가 끈 거라 자차보험이 안 됐다. 그때 그는 오히려 "명품백 하나 사준 걸로 치자"고 했다. 그런 대처나 워딩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우리는 막연하게 결혼해야겠다, 에서 결혼 준비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결혼이 급하지 않았고, 그래서 당장 결혼한다는 것이 와닿지도 않았다. 우선 그 당시 나는 어렸다(이십대 중반). 

그리고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다시피 했다(퇴사 후 쉬는 중). 또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뭘하든 새로 시작하는 수준이라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될 거였다. 그래서 더 소극적이었을 거 같다.


그런 분위기가 그에게도 감지 됐을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식 날짜를 논의하는데, 그는 평소와 다르게 짜증적이면서, 자기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주장했다. 그때 나는 토요일에 결혼식을 해야 한다고 했고, 그는 일요일에 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 이유가 있는 주장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교회를 다녔고, 주례를 목사님께 맡길 생각이었다(이 부분은 미리 합의했다). 그래서 일요일은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일요일로 정하라고 한 거다.


계속 설득해봤자, 협의점이 없는 말다툼일 뿐이었다. 나도 사실 설득이라기 보다 '나의 이유가 더 중요하니, 네가 수긍해라' 식이었던 거 같다. 물론, 토요일 저녁에 식을 올린다든가, 요즘 토요일에 식을 올리는 게 많다든가, 나름대로 근거를 담아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엔 그때 협의가 안 됐고, 그런 상태로 나는 "결혼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우리는 헤어지게 됐다.


물론 파혼의 이유가 결혼식 일정 때문인 건 아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압도적으로 나 자신에게 있었다. 그래서 더는 함께할 수 없었다.


이따금 친구들 결혼식을 가면, 내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내 주변 친구들은 정말 많이 결혼했다. 혹은 앞두고 있다.


더 어릴 때는, 결혼식을 보면서 결혼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과거가 아른아른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나이들수록 그런 생각과 감정은 사라지고 담담해지고, 때로는 결혼에 대해 더 냉정해졌다.


나는 결혼에 대해 열린 생각이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적령기? 젊을 때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황혼초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면 결정적인 이유는 내 기준에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꼭 결혼적령기(?)에 그런 운이 올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인식에 비해 결혼 '조건'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다양히 갖춰져야 할 조건에 비해 낭만주의적인 이유가 더 결혼할 수 있는 이유로 삼고 있다. 


물론 나도 이성을 볼 때 조건을 본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특성이 갖고 있는지,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경제적 수준과 비전이 어떤지, 등등 다양한 부분을 나도 본다. 안 본다는 게 아니라, 그런 조건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는 거다. 요약해서 말하면, 정신적인 교통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는 남자친구도 없지만, 결혼할만한 경제적 상황도 아니다. 상대방이 '돈은 아무 상관없어!'라고 한다면 모를까, 결혼할 돈도 없고, 누군가와 책임감 있게 함께 살만한 경제적 조건도 아니다.


만약 그때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자리잡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기에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 같다. 아니면 남편에게 많이 미안해했을 거 같다. 그리고 안정을 위해 언론사를 창간하거나, 대학원을 가거나 하지 못했을 거다. 아무래도 내 성장을 위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앞길을 막는 역할 아닌 역할을 했을 거다. 그런데 애는 아직 안 낳았을 거 같다. 아니면 아예 안 낳거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합의가 가능했을 거 같다. 그리고 어쨌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쉼이 되어주고, 이따금 열정이 되어주면서 살고 있을 거다. 나쁘지 않았을 거 같다. 그래도 결혼하지 않고, 내 앞길에 도전을 하면서 살아 온 몇 년이 있다는 걸 보면 결혼하지 않은 것도 괜찮은 선택 같다. 


그런데 만약 평생 싱글이라면? 혹은 긴 세월 싱글이라면? 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혼자서도 잘 살 거 같다. 혼자 사는 거에 대한 철학 건전하게 있고, 현재 혼자인 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나이들수록 이성관계를 떠나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까봐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데, 그리 걱정 안 된다. 오히려 1인가구 증가와 고령화에 따라 독거인들 끼리 연대하는 시스템이 잘 발달할 거 같다. 지금도, 세월이 흘러도 나만 싱글이 아니라 싱글이 많을 것이기에! 외롭고 고독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나중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 '법적 보호자'다. 병원을 가더라도 법적보호자의 필요성이 느껴질 거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필요하다. 나는 한국도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와 유사한 제도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쉽게 말해 결혼제도만을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동거인의 법적 지위 인정 등을 하는 거다. 프랑스만 이러한 제도가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앞으로 이러한 제도가 세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나는 나이들어서 그때 상황이 맞다면, 십대청소년~성인을 입양할 생각이 있다. 일부러 입양이 힘든 다 큰 아이를 입양하고 싶고, "자동 가족"이라기 보다 "인격적인 가족 형성"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독립적인 인격으로서 노력으로 가족이라는 관계를 이어가는 건 혈연으로 이뤄진 기성가족과 다르고, 태어나보니 그냥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인격적 선택이라는 게 의미가 깊다.


아무튼 그러한 생각이 있다. 입양은 싱글이 아니라 혼인상대가 있어도 서로 뜻이 맞다면 할 생각이 있다.


아무튼 나는 혼자서든, 함께든 내 주위에 있는 제 2자와 제 3자 타인 모두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지향하기에. 뭐든 상관 없다. 혼자서도, 함께도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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