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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사라 Dec 17. 2023

[유언 번외] 담대한 사람, 엄마.

최근 형부에게 ‘27일 저녁에 아부지랑 식사할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갑자기, 그것도 따로 사는 형부가, 왜 아부지 저녁을 챙기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날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생일도 아니고, 무슨 기념일도 아닌데, 왜 그러지?’라고 생각하면서.



전화 통화를 통해 알게 된 건, 27일에 엄마가 수술한다는 거였다. 엄마가 팔을 수술할 거라 수술과 입원, 그리고 집에 와서도 팔을 못 쓰니 형부가 와서 아부지를 케어하겠다는 거였다.


*새아버지는 척추장애가 있어서 일상에서 케어가 필요하다.


형부랑 연락하기 전날에 엄마를 보고 왔지만, 수술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엄마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형부에게 먼저 이야기를 전했고, 형부가 언니에게 전하고, 내가 알 거로 생각하고 물은 것이다.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에게 바로 전화해보니 전날에 말을 못 전한 건, 내가 잠시 들리고 가는 짧은 상황이라서 그랬고, 지난번에 오른쪽 팔을 수술했지만, 왼쪽 팔도 나빠서 이번에는 왼쪽 팔 수술을 진행한다고 했다.


우선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야.’


그렇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엄마는 거의 매해 연중행사로 수술을 받았다. 원래 연약하기도 하고, 나쁜 곳이 있으면 다른 곳도 같이 나빠지거나, 나이 듦에 따라 고장 나는 곳이 생기고 그런 거다. 그러다 보니, 수술을 엄청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는 정말 위험한 수술도 있었다.


엄마는 이런 상황에도(가족이 수술하는) 우리에게 어떠한 부담도 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우선 엄마 입장을 유추해 보자면, 엄마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신앙에 의지하는 거로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기대를 하지 않는 거다. 그리고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선한 염려를 하는 거다. 항상 아픈 사람이기에 항상 아픈 모습을 보이는 건, 상대방도 어느 순간 좋은 마음이었지만, 안 좋은 마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거다.


그리고 스스로 담대한 태도를 보유했다. 어쩔 수 없는 걸 인정하고, 고통과 아픔이 한계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겸손하게 한다는 걸 아는 거다. 어느 투정도, 원망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부정적이지 않게. 그 외의 삶에서 좋은 것들로 시선을 돌리고, 감사할 줄 아는 거다.



나는 나이 들어서 엄마처럼 담대할 수 있을까? 아파서 타인에게 의도치 않아도 고통을 전달하고, 염려를 전달하고, 미움을 돕고, 그런 가시 돋은 존재면서도 담대한 태도로, 부담 주지 않고, 한계를 넘는 기대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말이다.


엄마는 연약한 육체지만, 마음은 담대한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한테 서운하거나, 내게 기대길 바라는 막연한 감성적 죄책감이나, 부담이 없다. 그저 그런 엄마가 고맙고, 감사할 뿐. 그런 담대함에 감동할 뿐. 그것이 내게 최고의 유산으로 남겨지길 바라면서, 어떤 상속보다 값지다는 게 형용할 수 없이 벅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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