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유언 #10 [2025년 12월 27일]

올해도 유언을 씁니다. 오늘도 죽음 전의 삶을 씁니다.

by 즐거운 사라

"인간이 일년정도는 그럴 수 있어."


소중한 친구의 말처럼,

나는 사회적으로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자중하고 지냈다.


활발하게 사회적 활동을 못했다.

물리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마음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죄책감이 자신감을 내려놓게 하고,

자신감 결여가 모든 일에 자숙하게 했다.


늘 암울하고 우울했다는 건 아니다.

그저 스스로 못 견디겠으니

종종

현실을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버리곤 했다.


365일 계속 주늑 든 채로 지내는 건 사람을 망가뜨린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기에 스스로 망가질 순 없었다.

그래서 견디기 위해 현실을 벗어나는 일이 잦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떠난다고 했지만,

그냥 나를 못 견뎌서 다른 사람으로 연기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어느 날 유명한 인사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로는 밝게 맞이했지만,

진즉 그를 찾아 인사 한 번 할 기회가 없던 게 아니었다.

그는 긴 시간 가까이 있었고, 인사 나눌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그또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느꼈다.

그냥 오랜만에 만나는 시절 인연이다.

인사조차 나설 수 없을 만큼, 내 자신감은 바닥이었다.


옛날과 나는 다를 게 없었으나,

그 시절과 나는 다른 상황이긴 했으니 말이다.


그 전화 이후 나는 생각했다.

365일 정도는 고통 받았다.

그 고통이 내 사회적 삶을 꽤 어두운 저변으로 떨어뜨렸다. 스스로.

이제는 나를 지키고, 내가 책임질 것들을 감당하기 위해 그만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내 자신을 못 견딜만큼 고통스러웠다.

이만하면 됐다.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사람으로 기능하는 것이

고통 속에서 스스로 자숙하는 것보다 나은 삶이다.


물론 그러한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사고와 수술로 제대로 걷는 것마저 힘든 때에

갑자기 들어 온 스케줄들도 모두 소화했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다.

내가 힘든 때에 사회적 활동을 통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만회하려는 게 아니라, 더는 마이너스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쓸모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응당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발에 깁스를 한 채로 강단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사회력이었다.


아프다고 거절하는 것은,

내 처지에 양심적으로 용납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애쓰는 것이 나를 사회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지난 365일.

모든 순간.

나를 살게 해 준 수많은 운들이 존재한다.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계기들. 그 기회들.


양심적으로 고통과 회복을 위한 노력을 했으니,

이제는 고통이 와도 씻어내고 나서야 할 때라고 느낀다.


사회적으로 좋은 기능을 안 하는 게 더 잘못이다, 싶다.


더 애쓰고, 더 잘하고, 더 봉사하라.

좋은 방향으로.


만약 인간에게 주어진 바보짓과 쓸모있는 짓의 총량이 정해져있다면,

나는 쓸모있는 짓의 총량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거 같다.

더 쓸모 있는 존재로 살다가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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