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유언을 씁니다. 오늘도 죽음 전의 삶을 씁니다.
나이 듦.
어릴적에는 막연하게 먼 훗날, 그러니까 노년께 '나이들면 이렇구나'라는 걸 체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십대 초반을 지나고나서는 많은 변화를 느끼고,
특히 서른이 넘으면서 몸과 마음의 다양한 달라짐을 체감하게 된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당연하다.
옛날에는 이차성징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면 자식을 낳았고, 내 나이쯤에는 장성해가는 자식도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나의 다음 세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며, 내 삶의 뒤를 이어 생존하도록 삶의 지혜를 전수했을 거다.
그리고 병이나 사고로 이른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나이에 나는 아직 젊은이라고, 청년이라고 불리우며 살고 있다.
아프면, 고쳐지고, 아파도 죽을 만큼 아프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의학기술이 역노화나 무병장수 할 수 있도록 발전하지는 못했기에, 늘 아프면서 살아간다.
때때로 공상적인 상상 속에 빠진다.
내가 어린나이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일단, 몸이 매우 가벼울 거 같다.
"이 동작이 된다고?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하면서 놀라운 감회를 느낄 거다.
초등 3학년 때 스스로 자전거를 배웠다.
그때 부모님은 맞벌이고, 언니는 고학년이어서 나 혼자 언니의 자전거를 끌고 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연습했다.
넘어지고, 넘어지는 걸 반복하면서 결국 혼자서 두발 자전거를 타게 됐다.
그 뒤로 자전거에 빠져서 하교 후 자전거를 타고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그리고 4학년께 이차성징이 몸을 무겁게 했다.
변비가 생기거나, 아랫배가 나오거나 그랬다.
그래서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다녔다.
그리고 집에 와서 모래주머니를 벗으면 날아갈 듯 가벼운 기분이 그리 좋았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과식해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끝나는 일이었고,
친구들과 옆 동네를 놀러가며 하루종일 몇 만 보를 걷는 것도 일상적이었다.
먼 거리여도 당연히 등하교는 걸어서 다녔고, 하교 후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 없이 걷는 게 평범했다.
그리고 일찍부터 잔병치레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그래도 몸이 가벼운 나이가 있었다.
앞구르기, 뒷구르기는 집에서 심심하면 하는 놀이였고,
윗몸 일으켜기는 또래 친구들 보다 가볍게 소화했다.
그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은 도저히 불가한 몸의 가벼움.
조금만 과식해도 소화불량.
조금만 무리해도 어지럼증과 두통에 시달리고, 혈액순환이 안 되서 고통 속에 잠든다.
나이 들면, 더 젊은 시절, 더 어린 시절이 그리운 까닭은 감성적인 것도 있지만
우리가 느끼는 육체의 다름 때문도 있다.
노화.
늙어가는 것.
아직은 피부가 좋지만, 십대 때 그 투명한 살결은 아니다.
아직도 타고난 유연함은 있지만,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많은 움직임을 가로막는다.
공상 영화처럼 어린 시절 몸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부터 꼿꼿이 허리와 어깨를 펴고 다니겠지.
그때는 가슴이 발달한 게 창피해서 늘 구부리고 다녔는데,
그게 앉거나, 서거나 나쁜 자세로 지내게 했다.
그리고 그때는 구부리고 있어도 몸이 금세 회복했으니까.
그래도 더 오래 운동하고, 더 좋은 선택을 하겠지.
노년이 아니라 서른께 늙은 몸을 마주할 거란 걸 잊지 않겠지.
삶에서 변화는 그리고 늦게 깨닫지 않는다.
매순간이 변화고, 어느 새, 금세 바뀐 나와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맞이할 60대의 나를 위해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