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알았던 사람.

털어버려, 떨쳐버려

by 즐거운 사라

얼마 전, A라는 사람이 꿈에 나왔다. 꿈 내용은 절망적이고 역겨웠다. 그가 강제로 나에게 성행위를 하는 내용이었다. 꿈에서 나는 무력하고, 무력했다. 할 수 있는 건 혀를 깨물지 않고 그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 정말 불쾌한 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갔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소위 센 척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어릴 때부터 사교성이 좋아 친구들과 지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전학 온 나를 외계인 보듯 대하는 애들에게 강한 척을 해야 동료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초반부터 형편없어 보이면 놀림감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존재감이 없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놀림감이 되느냐, 주도적인 인물이 되느냐 중에 선택해야 했다. 대개 강한 태도를 보여야 했던 상대는 남자애들이었다. 그중 A가 가장 강한 상대였다. 다른 반임에도 불구하고 A는 학년 전반에서 강하기로 유명한 아이였다.


A와는 우리 때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뀐 중학교에 올라갔다. A는 초등 때도 중학교를 올라가서도 소위 짱이었다. 힘세고 제압하는 분위기도 남달랐다. 여중이었던 곳에 3개의 남학생반이 생겨 교사들도 남학생들 기강을 잡지 못했는데, A가 군대처럼 기강을 잡았다. 말로만 제압한 게 아니라 수많은 폭력이 있었지만, 교사들도 대개 묵인했다. 그렇게 두는 게 전체를 다스리기 쉬웠기 때문이었으리라.


A와는 친했다가 안 친했다가 반복했던 거 같다. 그 친구도 내가 전학 왔을 때처럼 늘 사람들 앞에서 강한 체해야 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A와 둘만의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와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다. 꽤 감성적이고, 여리고 솔직했다.


어느 날 A가 ‘나는 넷보다 셋, 셋보다 둘이 좋아.’라고 말했다. 나도 동감했다. 아직도 그 대사가 마음에 드는 걸 보니, 때때로 우리는 마음이 동했고 같이 사춘기 감성을 느꼈다.


A는 항상 같이 어울렸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나와 친한 척을 하진 않았다. 나도 그랬다. 정확히 친했다가 아니었다가 반복해서 친한 모습을 보이기 부담스러웠다. 둘만 남아 대화할 때는 정말 잘 통했는데, 그건 비밀 아닌 비밀이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항상 우리 사이에 설명하기 힘든 뭔가가 있었다. 굳이 추측하자면 자신의 형과 나에 관련된 열등감이었던 거 같다. 나는 그의 형을 좋아했었다. 그 형은 상대적으로 얄팍한 외모에, 싸움도 더 잘했고, 성격이 좋고 리더십도 있어 남녀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았다.


아무래도 A 입장에선 친구가 잘난 형을 좋아하는 건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A가 날 이성적으로 좋아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열등감과 호기심이 얽혀진 복잡한 감정을 나에게 향했다.


성인이 되어 들은 소식은 A는 살인사건에 연류돼 복역했다. 사실상 십대후반부터 연락을 끊었었다. 그의 행보는 자연스럽게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십대 시절, 나는 혼자만의 복잡한 세상에 묶여있었고, 그는 굳이 거친 세계를 겪고 있었다.


어차피 멀어질 상황이었지만, 끊어버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는 어리고, 어리고 어린 십대였다. 추운 날, 같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기 힘들어 상가건물 안에 화장실에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 원래 혼자 볼일 보러 들어간 김에 머물렀는데, 그가 들어왔다. 단순한 얘기가 오갔을 거다. 그리고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더니 나를 겁탈하려고 했다.


둘 다 필사적이었다. 해하려는 자와 당하지 않으려는 자의 지치는 싸움이었다. 힘으로 이길 수 없어서 설득해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끈질겼다. 겨우 방어하는 수준으로 버텼다. 그러는 중에 나를 때리거나 몸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지쳤는지 반쯤 포기했는지 힘이 빠졌다. 그 틈에 나는 도망가듯 뛰쳐나왔다.


그 일은 정말 역겨웠다. 내 살갗에 닿은 침과 살. 옷을 훑어 올라온 손. 강하게 침입하려는 힘 때문에 온몸이 아팠다. 토할 것 같고 어지러운 처지를 어떻게 진정시켰는지 모르겠다. 분하고, 역겹고, 놀랐고, 너무너무 슬펐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동시에 그가 안쓰러웠다. 그가 나를 해하려 할 때 공포가 아니라 애처로운 태도를 보여서 그랬을까. 공감을 나누던 지난 시간 때문이었을까. 사실 피차 애처로움을 떨칠 수 없을 거다. 정확히 그는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고, 나는 그냥 슬픈 거다.


그 상황에서 형과 나에게 설명하기 힘든 감정, 열등감들이 그의 말과 뉘앙스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의 콤플렉스에 왜 내가 껴있는지 억울하지만, 억지로 측은지심을 떨치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힘들다.


A는 왜 그렇게 못나게 살까. A는 왜 그렇게 불쌍하게 살까. 그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잘 이겼고, 잘 성숙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는 불쾌한 느낌과 동정은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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