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술 그리고

나는 우울할 때 글이 안 써진다.

by 즐거운 사라


많은 예술가가 새벽의 감성과 어두운 행동, 그리고 우울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심한 경우 어두운 밤에, 바지런하지 못한 품행을 일삼으며, 우울함에 허덕여야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새벽은 제법 재미있었다.


어릴 때부터 새벽마다 밖에 나가길 좋아했다. 집에서 할 게 없었다. 아니다. 정확히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2~3분 흡연을 위해 새벽길을 나간 건 아니었다. 스치는 바람 속에서 건조함을 느끼고 싶었고, 도시 하늘 위에 작은곰자리의 위치를 보며 계절이 흐르는 것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몇 시간이고 앉아있다 집에 들어갈 때도 잦았다.


어릴 때는 새벽이 좋았지만 할 게 별로 없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도 않았고, 돈이 있어도 마땅히 갈 곳은 없었다. 새벽에 문 연 식당을 가거나, 밤새 공원에 앉아 대화하는 게 고작이었다. 잠도 거의 못 자는 시절이었지만 그때도 시간은 빨리 갔다.


어느 해는, 거의 매일 취해있었다. 새벽마다 나는 술집에 있었다. 자주 가는 웨스턴바에 앉아 올드파를 마시거나, 코스모폴리탄을 마셨다. 마티니 잔에 나오는 붉은 빛 오렌지 맛 칵테일 두 세잔에 취해버리기 일쑤였다.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매실주를 마셨다. 소주를 못 마시는 이유로, 그해 매실주 500병은 마신 것 같다.




웨스턴바에 있을 땐, 마치 모두 역할 놀이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역할에 충실해서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늘 똑같았고, 그래도 재미있었다. 가령, 미군 혹은 외국인 친구들은 항상 둘 중 하나였다. 만취해서 칭찬을 섞어 번호를 물어보거나, 무조건 게임을 하자고 한다. 게임은 보통 보드게임이나 탁구공을 이용해 결국 맥주를 마시는 게임이었다. 혹은 춤을 출 때도 많았다. 클럽 음악이나 팝에 민감해야 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별로 따라가지 못했다. 가끔 나이트위시가 부른 the phantom of the opera가 흘러나오면 흥에 겨워 따라 부르고 앙코르 요청했다. 그러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가 되면 바에서 나와 집에 가거나 다른 술자리를 갔다.


어느 날은 술 마시고 술 마시다 기억을 잃었다. 술잔 앞에 놓인 약 네 알을 술과 삼켜버렸다. 술자리에서 갑자기 내 방으로 바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알몸이었다. 샤워한 기억은 없는데 세탁기에 빨아 건조 시킨 마냥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이마가 몹시 아팠다. 이마에서 피가 났다. 그날 선명한 기억은 없고, 감각적인 기억만 났다. 나는 날았고, 글자가 살아 움직였고, 물줄기 찰나의 순간 속에 빠져서 유희를 즐겼다. 결론은 약 4알을 먹고 얼굴에 흉터가 생겼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순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었다. 한적한 새벽길 드라이브하는 걸 좋아했고, 겨울에는 조용한 새벽 혼자서 쌓여있는 눈에 첫발자국을 남기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거의 새벽은 외롭고 그래서 술을 마셨다. 새벽과 술은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건강이 나빠졌다.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소주를 못 마신 이유는 소주 마시고 몇 차례 탈이 나자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래도 소주 대신 마실 술은 많았다. 탈이 나도 술을 마셨다. 몸이 부어도, 토해도, 정신을 잃어도, 얼굴에 흉터가 생겨도 술을 끊을 수 없었다.


한때는 술을 끊을 수 없을 거로 생각했었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술을 마시는 게 더 비루한 노릇이었지만, 비루함을 인정하는 게 더 비참했다.


새벽은 재미를 주는 대신 자존감을 가져갔다. 외모는 엉망이 되고, 그동안 이뤄놓은 것도 없었다. 술 마시는 게 전부였다. 정말 실패자 같았다.


점점 술과 멀어졌다. 물론 지금도 술은 마신다. 대신 2차, 3차, 4차는 안 간다. 또, 어제 마셨으면 오늘은 안 마신다. 술자리에 가도 술을 안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술은 자주 마실수록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커진다. 해독을 못 해 병신이 돼도 술 마실 기운은 난다.



새벽과 술,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지금은 해 떠 있는 낮이 좋다. 이제는 노을을 감상하고, 아지랑이를 감상한다. 가끔은 내일을 기대하고, 오늘 함께할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밝은 하늘 아래에서 글을 쓴다. 나는 이제 우울할 때 글이 안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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