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너를 사랑할게
자식은 부모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건 분명 아들놈 잘못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서른여섯 평생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삶을 모토로 살아온 나에게,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우리 부부에게 피해 주려고 태어난 것만 같은 아들놈을 케어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지 말란 말을 1분에 한 번씩 소리쳐도 그만둘 줄 모르며, 돌쟁이 둘째가 뭐만 잡았다 하면 그걸 낚아채 기어이 동생을 울리고야 만다. 귀여워서 얼굴 한 번만 쓰다듬으면 아빠가 때렸다고 눈물 콧물을 짜며 거짓 울음을 쏟아낸다. 실제로 또르르 굵은 눈방울이 쏟아지면 아 이건 다른 차원의 재능이구나. 아들의 연기력에 감탄하다가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가 아빠가 때렸다고 고자질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마치 원두커피 안에 빠진 쌈장처럼, 제육볶음에 토핑으로 뿌려진 트러플처럼, 한없이 귀엽지만 30대의 나이로 분석해 낼 수 없는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그것을 이해하려 할 때마다 나는 벽에 부딪혔다. 일반적인 높이뛰기 실력으로는 그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기다란 장대를 가지고 30미터 뒤에서 도약한 후, 장대의 지지와 탄력을 이용해 45도 각도로 몸을 날려도 될까 말까 한 이 현실 육아의 장벽에서, 학창 시절 100미터를 18초에 주파하던 나의 운동신경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뛰어봤자 결혼하고 15킬로가 불어버린 나의 몸으로는 점프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좌절들이 쉽게 기화된다는 것이었다. 혼란은 대개 쉬지 않고 지속된다. 내가 방을 치우면 졸졸 내 뒤를 따라다니며 집을 어지럽힐 때. 호기롭게 점수 좀 따 보겠다고 꺼낸 닌텐도 스위치를 같이 하다가, 자기 마음대로 마리오가 안 움직인다며 대성통곡해서 곤히 잠든 둘째를 깨울 때. 먹고 싶다고 생떼를 부려 사준 치킨을 한입 먹고 맛없다고 안 먹을 때. (아. 이건 좋은 건가)
하여간 그러한 분노들 조차도 놀다 지쳐 잠든 아들 모습을 볼 때면 사르르 녹아 어느새 공중분해되고 만다. 그렇게 또 나는 이전의 고통을 망각했다. 아 귀여워. 역시 내 아들. 나지막이 내뱉고 아들의 방에서 나와, 내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아까 찍어둔 아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오늘도 또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소원을 빌어본다.
내일은 안 싸우고 잘 놀아줘야지.
나와 닮았지만 이렇게 나와 전혀 틀린 (말 안 듣는) 생명체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의 삶을 누리는 것에 익숙한 나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이건 아가페적인 사랑을 통해 열반에 올라 비폭력 무저항의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건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육아에 대한 순결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충만해야 된다는 얘기다. 할렐루야. 직장에서 욕먹고 회사에서 돌아와 저녁과 주말에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왔다.
그렇지만 내 아들이니까. 종교가 없는 나지만, 또 한 번 신을 믿는 대신 아들을 믿어봐야겠다. 내일은 또 아빠 말을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그렇게 더 사랑해줄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