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가르쳐라
좋은 게임이란 게 있나요?라고 물어보신다면 나는 단연코 '있다'라고 대답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기준들이 있는데 그 기준과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토리가 있을 것
둘째 게임이 종결되는 엔딩이 있을 것
셋째 채팅이 없는 게임일 것
넷째 한 판의 플레이타임이 짧을 것
다섯째 폭력성과 선정성이 심하지 않은 것
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나는 스토리가 있는 게임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게임이 단순히 버튼과 키보드를 조작하는 소모성 여흥이 아닌 하나의 다채로운 콘텐츠로 인식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게임이 독자적인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수익성 사업이었다면, 현대에는 문학, 영화, 출판, CG, 전자제품 업계로 확장성이 무궁무진하게 넓어졌다. 스토리는 게임을 단순히 반복적 노동이 되어버리는 것을 방지하며, 다른 문화적 콘텐츠로서의 체험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힘을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엔딩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절제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없는 게임은 많지 않지만, 엔딩이 없는 (혹은 아이들 수준에서 물리적으로 클리어할 수가 없는 게임) 게임은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게임은 성취감을 느낄 수도 없고 단순히 게임상 숫자가 증가하는 것이 지상목표가 되어버린다. 스토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끝을 보지 못하면 게임을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하지 못하고, 게임 속 캐릭터와 내가 동일시돼버리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절제력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이러한 숫자놀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스토리의 종결로 아이들을 강제적으로 게임의 연결고리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들이 현금과금을 위해서 엔딩을 마련해두지 않는다. 회사 입장에서는 유저들을 계속 잡아두고 플레이타임을 지속시켜야만 현금 사용이 많이 지고 수익성 확보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값이 싸거나 무료라고 적당한 게임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주는 것보다는 그 게임의 특성을 잘 알아보고 공부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세 번째로 채팅 문제인데, 나도 이것에는 일련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게임에 잔뼈자 굵은 나조차도 게임 안에서의 채팅이 꽤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설도 많고 은어, 불편한 표현, 협박이 난무한다. 준 범죄에 가까운 일들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시대가 발전하여 이러한 문제들을 필터링하고 순화하는 기술도 발전하였지만, 채팅 기능 자체를 없애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기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적어도 아직 사고가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채팅을 사용하지 않는 게임을 먼저 소개해주는 것이 나중에 겪을 채팅창 문제에 범퍼로 작용할 것이다.
네 번째로 플레이타임 문제인데, 나는 한판에 2-3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문제가 생겼을 때 게임을 종료하고 탈출하는 것에 용이하며, 과도한 몰입을 제어할 수 있다. 게임시간이 짧게 반복될수록 아이도 지루함을 느끼고 게임을 그만할지 더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구간이 많아진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그러한 의사결정을 계속해볼 수 있는 여유 역시도 주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폭력성과 선정성 문제는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험상 부모들이 생각하는 폭력성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폭력성에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스트리트파이터 2를 줄기차게 했었지만 지금 그 오락을 아이에게 시켜주고 싶지는 않다. 나도 아빠가 되니 생각이 바뀐 것이다. 기준이 자식을 키우다 보니 엄해진 것은 있지만, 적어도 아이에게 혈흔이나 죽음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게임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기준에 따라 고른 게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위에서 기술한 브롤 스타즈이다.
브롤 스타즈는 게임 자체에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엔딩도 없지만, 채팅창으로 인게임 채팅을 거의 나눌 수 없고, 플레이타임이 굉장히 짧으며, 캐주얼한 그래픽을 사용하기에 아이들에게 좋은 게임이다. 특히 브롤러라고 불리오는 캐릭터들을 모으는 재미도 있으며, 그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은 요즘 유행하는 굿즈로 제작이 많이 된 터라 아이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다. 또래집단에서도 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잘하거나 점수가 높다면 약간의 게임 권력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선택의 이유였다.
하지만 브롤 스타즈는 끝이 나지 않는다. 계속 캐릭터의 레벨이 성장할 뿐 다른 사람들과 하는 대전 게임이라 완결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게임이란 원래 한 편의 영화처럼 완결되는 것이라는 경험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이도 게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판단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봤다.
그래서 고른 게임은 슈퍼마리오 3D 월드였다. 닌텐도 스위치로 구동되는 이 게임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일단 다른 사람과 2인 플레이가 가능하며 (보통 나와 아이가 같이 플레이했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입장과 퇴장이 용이했다. 한 판의 길이도 2-3분으로 굉장히 짧으며 아이들이 이해하기 좋은 가벼운 스토리도 있고 엔딩도 있다.
[ 아이는 슈퍼마리오를 통해 게임 인생 처음으로 완결이라는 맛을 보았다 ]
완결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게임도 그만할 시점을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브롤 스타즈를 오래 했으니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을 아이와 나눈다. 아이는 아직은 조금 더 할 요량인 것 같지만,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키우고 있는 캐릭터에 정체가 왔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그 판단은 스스로 하게 둘 예정이다. 하지만 목적의식을 상실한 채 한 가지 게임에 탈출하지 못하는 것보다 다른 콘텐츠를 갈아치우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게 더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예정이다.
린저씨라고 불리는 리니지 헤비유저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과금을 해왔고 오랜 플레이타임을 지속하는지 모르셨던 분들은 기절초풍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RPG 게임들을 소개해줄 생각은 없다. RPG 게임은 시간의 대량소비가 동반돼야 하는 게임이라 어린아이들에게는 좋지 않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캔디 크러쉬 사가 때도 맺고 끊는 과정을 잘 이겨내 주었고, 지금 브롤 스타즈도 잘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슈퍼마리오를 클리어했지만 당분간은 다른 게임을 소개해줄 계획은 없다. 왜냐하면 아이는 최근 1년 동안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실컷 소비하고 완결까지 맛본 것으로 1차적인 경험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스포츠로 관심의 폭을 넓혀주고자 농구와 야구를 알려주기도 하고, 코로나가 진정되면 실제 경기장에도 데리고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근본은 게임을 하나의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임 세계의 변화도 이해하지만 아이가 주체성을 가지고 컨트롤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은 게임이 아이의 인생에서 정착하고 소비되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도움이 된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굉장히 나중에 읽히게 된다면 그때는 브롤 스타즈는 이미 아무도 하지 않는 게임이 되었을 수도 있고 슈퍼마리오도 시리즈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똑같다.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다면 시간이 지나도 그 기준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 끝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