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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엄과 낭만사이 Apr 04. 2023

다시 1년 차. 플로리스트 도전기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나는데 이거 괜찮을까?

회사를 다니며 재직자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 수강했던 꽃꽂이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어릴 적 단풍잎을 주워 코팅해 책갈피를 만들고,  놀이터 옆 화단에 꽃이 피면 향기를 맡던 유독 자연을 좋아했던 어린 나를 자주 상기하며 회사일로 힘들 때마다 직무 전환에 대한 달콤한 꿈을 꾸었다. 에 딱지 앉도록 어른들께 들었던 말들. 기술을 배워야 평생 먹고 산다던. 어차피 이렇게 열심히 살 거면, 내 사업을 해보자라는 여러 가지 생각들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연남동 잔디밭에서 돗자리를 깔고 꽃다발 포장 연습을 하고 있는데 어떤 커플이 다가와 꽃을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한송이를 포장해서 팔게 되었는데 그 모습을 보던 주변 사람들이 몰려와 꽃을 사겠다고 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어버이날을 앞둔 상황이라 그랬는지 효심 가득한 분들 덕에 순식간에 나의 양동이는 텅 비게 됐다.


첫 장사와 초토화된 나의 꽃 양동이


'내가 만든 꽃다발을 사람들이 산다고?' 강렬한 경험이었다. 뭔지 모를 짜릿함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간질간질한 쾌감이 올라온다. 회사만 다니던 사람이 장사의 길에 한 발짝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했다. 5년 반 회사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그저 새로운 세상만 있을 뿐이었다. 모아둔 목돈으로 플라워샵 창업을 하겠다 마음먹고 인사동, 판교, 방배동까지... 저렴한 월세만 나왔다 하면 꽃집 자리를 보러 갔지만 웬일인지  일이 쉽게 저질러지지는 않았다. 얼마 후 플로리스트 학원에서 만난 동생이 웨딩장식 파트타임 자리를 소개해주었다. 업체 대표님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나이와 직급이 일치된 조직생활만 알던 나에게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뒤늦게 이 업계로 뛰어들었으니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케이스가 존재하는구나, 과연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똑똑. "처음 뵙겠습니다"

신사동 2층 사무실. 웨딩 오브제와 집기로 가득 찬 곳으로 출근했다. 아르바이트생 네 명은 웨딩 전날 모여 정신없이 꽃을 꽂았다. 신부가 선택한 콘셉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 만들어진 꽃들을 대표님 차에 싣고 웨딩홀로 가서 간단히 먼저 세팅을 해놓고 퇴근한다.


웨딩 당일이 되면 앞치마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무거운 오브제를 들고 나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특히 그 웨딩홀은 1층과 2층을 같이 쓰도록 되어 있어서 플로리스트들은 수없이 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부터 무릎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업무 환경이 관절에 무리가 가고  불규칙적인 식사에 살도 찐 탓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주 들렸다. 문득 무서워졌다. '이 일을 오래 하게 되면 여기저기 아플 것 같은데 그걸 감수하고 이 일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살짝 멈칫하고는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할 수 있을까? 라니. 해야만 한다. 내가 포기하고 온 게 얼마인데, 그동안 쌓아둔 내 인사 커리어를 다 버리다시피 했는데 고작 무릎 딱딱 소리에 두려워진다니,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렇게 한 달 일을 하면 웨딩알바로 버는 돈은 60만 원가량.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다른 꽃 알바를 병행해야 했다.

이 돈으로는 20년 만기 월 15만 원짜리 저축보험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근데 방법을 잘 모르겠네? 생각보다 앞이 뿌옇다.


나이 서른에 새로운도전. 괜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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