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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Sep 29. 2021

그런 날이 있다

_카카오웹툰 '남남' 20화. '그런 날이 있어' 리뷰






그런 날이 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주변의 작은 소음들이 미칠 듯이 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날. 그런 날엔 여지없이, 주변의 각종 소리들무방비 상태인 나를 찾아와 깔끔하게 정돈해놓은 마음을 마구 어지럽혀 놓곤 했다.


카카오웹툰 '남남' 20화. '그런 날이 있어' 중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전화벨 소리, 발자국 소리, 타자 소리, 심지어는 동료들의 소소한 대화 소리마저 듣기 버거워질 때쯤,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이어폰을 찾는다. 가방에서 건져낸 이어폰은 엊저녁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봤던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 단 한 번의 어김도 없이 엉켜있는 이어폰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클리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회사에서 마감이 촉박한 일정을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연말이니까. 지저분해질 때마다 치우고 있는데도 자꾸만 책상 위는 카페인의 잔해로 난리가 나고, 예민해진 탓에 프린트 인쇄 소리 같은 것마저 배가 되어 들려온다. 힘든 감정은, 잊은 채로 가방에 이리저리 굴리다가 어느 순간 꺼내 본 엉킨 이어폰 같을 때가 있다.

- 웹툰 ‘남남’ 20화. '그런 날이 있어' 중



엉킨 이어폰을 풀어보려다 오히려 화병으로 죽겠다 싶어, 풀다 만 이어폰을 다시 가방 한 구석에 처박아 버린다. 이런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어 하던 일을 올스톱하고, 휴게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거나 바람을 쐬러 나간다. 조금 진정된 듯싶어 돌아오면 어느새 점심시간. 이런 날은 입맛도 없지만 동료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억지로 식당으로 발을 옮긴다. 억지로 억지로 몇 숟갈 뜨 나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있고, 남은 업무는 시간 내에 마치기엔 너무 많다. 커피 한 잔 마시자는 동료도 ‘쟤는 시간이 남아도나?’ 괜스레 고깝다. 표정이 어둡다며 어디 아픈 거 아니냐는 진심 어린 걱정도 오늘은 달갑지 않다. 그냥 다 귀찮다. 별 게 다 우울하고 귀찮고, 짜증이 난다.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 내가 왜 이러는지.

가끔 어디가 고장 난 하루가 찾아오는데

그게 오늘이었던 것 같다.

- 웹툰 ‘남남’ 20화. '그런 날이 있어' 중



진희는 결국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문다. 후배인 영민은 담배 한 가치를 내어 불을 붙여주며 “선배,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묻는다. ‘얜 또 웬 참견이지.’ 영민의 걱정에 다른 뜻이야 있었겠느냐마는 후배의 걱정도 오늘만큼은 오지랖처럼 느껴진다.

누구보다 괴롭고 잔뜩 꼬인 하루를 보낸 진희는 퇴근 후 꾸벅꾸벅 졸다 결국 종점까지 가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까지 기사님의 꼬장(?)에 시달리며 고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 날 늦잠 지각으로 허겁지겁 출근한 진희의 앞에는 협력 업체에서 싼 ‘똥’이 놓여져 있었다. 회사에서 진행 중인 이벤트 티셔츠 제작 업체에서 포장지에 적힌 사이즈와 티셔츠의 사이즈를 잘못 분류하여 보내준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팀원들과 티셔츠 사이즈별로 재포장 작업을 시작한 진희. 작업을 이어가며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어제 풀지 못한 이어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진희의 엉킨 이어폰은 어이없게도 후배 영민의 손에 손쉽게 풀린다. 단순 작업을 반복하며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진희의 기분도 풀려 있었다.






삶이란 가끔, 이렇게 엉킨 이어폰 같은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나를 무척이나 괴롭힌다.


혼자서 풀어보려 끙끙대지만

때로는 혼자서 해결하기엔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것.


몇 번의 끙끙거림 이후 가방 속에 처박아 두기 일쑤이지만

의외로 간단히 해결되기도 해서 ‘이게 이렇게 쉽게 풀리는 거였다니…’

금세 허탈해지기도 하는 것.


내가 고장나도,

다른 사람들이 고쳐주기도 하는 것.

그게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닐까 싶다.



진희의 이야기에서 나는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는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그날의 감정을 다음 날까지 이어가면 안 된다는 것. 마지막 하나는 버거울 땐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소소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 그러다 이유 없이 우울하고 기운이 빠지는 그런 날이 찾아오더라도 나를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보답하는 마음으로 씩씩하게 살아야겠다. :)


_with 사각사각 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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