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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Apr 24. 2024

무제(미처 정리되지 못한 마음에 대하여)

2024. 04. 24. 새벽단상



종종 미처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요즘 들어 이상하리만치 지난날에 대한 감정들이 뒤죽박죽 밀려든다. 차곡차곡 개어 정리할 새도 없이 밀려든다. 이런 날이면 나는 그저 한없이 무력해지고 만다.


나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명료한 것이 좋았다.  배가 고프면 먹으면 된다. 코가 답답하면 코를 풀면 된다. 간단하다. 나는 이런 간단한 것들이 좋았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에 매료되곤 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욕망은 강렬하다. 이런 욕망에 사로잡힐 때면 어찌하면 좋을까. 방법을 몰라 나는 글을 쓰는 모양이다. 글쓰기는 내게 있어 일종의 배설 행위다.


흔히 빗대어 표현하듯 글쓰기는 넓은 의미에서 배설이다. 배설물 중 가끔 괜찮은 녀석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휴짓값이 아까울 정도의 쓰레기들이다. 그래도 괜찮다. 배설의 의의는 가치에 있지 않다. 배설은 욕구를 해소하고, 불편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닿을 수 없는 욕망은 나를 영원히 괴롭힌다. 예를 들어, S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은 욕구가 인다거나 J에게 다시 시작해 보자는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성은 사정없이 나의 뺨을 갈기지만 마음은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스럽다. 요동치던 마음을 한참 동안  달래다 보면 어떤 날은, '왜 안 돼?' 하는 마음마저 들곤 한다. 정말 연락 한 번 해 봐? 휴대전화 액정 속 네 이름을 뚫어져라 응시하다 제정신이 아닌 나를 발견하고선, 사정 후의 그것처럼 급격한 현타가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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