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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Sep 21. 2022

이런 가게 어때요?

_점심시간, 불편한 혼밥러의 소심한 일기



종종 찾는 식당이 있다. 직장 근처 유일한 라멘집이고, 점심시간이 이른 내가 혼밥하기 딱 좋은 아담하고 한적한 가게라 즐겨 찾는다. 남자 사장님 한 분과 여자 직원 한 분, 이렇게 둘이 운영하는 가게인데 아마 둘은 부부이거나 남매인 것 같다. 직원분은 주로 홀에서 일을 하시는데, 단골인 나를 알아보시고는 살갑게 맞아주시는 편.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대체로 감사할 때가 더 많다. 남자 사장님은 주로 주방에서 요리를 하시는데 살갑지는 않다. 오히려 좀 차갑다고 해야 하나, 띠껍다고 해야 하나… 암튼.


가게 오픈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다. 걸어서 천천히 이동하면 오픈 10분 전쯤 가게에 도착하곤 했다. 단골이니, 하루 이틀 일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오늘도 11시 20분쯤 가게에 도착했다. 열린 가게 문 사이로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안녕하세요, 큰소리로 인사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직원분은 여느 때처럼 친절히 나를 맞아주었다. 문제는 사장님. 오늘따라 사장님은 오픈 시간은 11시 30분이니 다음부터는 일찍 오지 마시라, 원래는 일찍 오셔도 손님 안 받는다, 라며 기다릴 테니 천천히 준비해 달라는 내게 굳이 굳이 한두 마디 쓴소리를 으셨다.






처음 일찍 온 것도 아니고, 몇 년 전부터 단골인데 서운함이 앞섰다. 심지어 이분들은 "오늘도 멘마(마죽순) 빼드릴까요?"라며 내 입맛까지 알고 계시는 분들이다. 그런데 왜? 오픈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손님이 홀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불편해서 그러신 것일까? 아니면 단 10분이라도 일하는 시간을 앞당기고 싶지 않아서? 그것도 아니면 단 10분이라도 오픈 준비를 하는 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을 손님이 안 돼 보여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오픈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고 해서 굳이, 손님에게, 다음부터는 오픈 시간에 맞춰 오라니, 이건 좀 해도 너무했다.



보통 자발적 혼밥러들은 먹고 싶은 메뉴를, 여유롭고 편안하게 먹기 위해 혼밥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혼밥에 적당한 장소는 기본적으로 아담하고, 고즈넉하며, 편안한 곳이 좋다. 그러나 나는 사장님의 한 마디로 이곳이 불편해졌다. 내가 이런 얘길 들을 정도로 잘못했나? 심지어, 기다릴 테니 천천히 하시라고까지 말씀드렸는데… 섭섭하고, 기분이 나빴다. 마음이 불편해지니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내 돈 내고 왜 주문한 적도 없눈칫밥을 먹어야 하지? 우쒸, 지금이라도 나갈까? 결론적으로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때의 나는 "아, 그러세요? 그럼 나가서 기다릴게요." 또는 "아, 그러시구나. 그럼 다음에 올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 가게를 나왔어야 했다.





다음부터는 오픈 시간에 맞춰 오세요.
원래는 일찍 오셔도 손님 안 받아요.



 

몇 번을 다시 봐도, 좋은 뜻으로 한 말 같지가 않다. 준비도 안 됐는데 왜 들어왔냐. 오픈 시간 11시 반인 거 몰랐냐. 꼭 나무라는 것만 같아 불편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오픈 전에 손님을 안 받을 요량이었다면 애초에 가게 문을 닫아 놓거나 입간판으로 출입을 통제하면 될 일인데, 가게 문은 다 열어놓고서 일찍 왔다 뭐라 하시니 나로서는 도무지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라멘은 언제나처럼 먹음직스러웠지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국물 몇 번 떠먹으며 늑장을 부렸다. 어지 한동안 이 라멘과도 결별하게 되리라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처음 발견했을 당시 이 가게는 남들은 잘 모르고, 나만 아는 숨은 맛집이었다. 반지하인 데다가, 협소한 골목 사이에 있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았던 탓인 듯했다. 점심시간이든 저녁시간이든 대체로 한산했는데, 가게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었겠지만 혼밥 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렇게 종종 찾던 것이 어느덧 햇수로 5년이 됐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자리가 꽤 찼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손님이 늘었으니 축하할 일이지만서도, 내가 사랑했던 고즈넉함과 안락함은 그만큼 덜어진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은 전에 없던 사장님의 가르침(?)까지.


서둘러 그릇을 비우고는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꼭 체한 것처럼 속도 맘도 더부룩했다. 급히 넘긴 면발들이 맘속에서 어지러이 엉 있는 모양이다.


 






사장님은 내 다음으로 들어온 손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 기준에서는 잘 이해가 지 않는 처사다. 오픈 시간 5분, 10분 전에 가게를 방문한 것이, 그렇게까지 잘못인가? 이게 그럴 일인가? 아니면 사장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데, 내가 괜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섭섭하고 기분 나빴을까? 아무렇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어쨌든 나는 나의 최애 식당을 한동안 방문하지 못할 것 같다.


불편한 곳에서는 아무래도 혼밥을 하기 어렵다.  

특히 마음이 불편한 곳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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