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아들녀석이 에디슨의 전기를 읽고는, 전기가 처음 발명되던 순간의 짜릿함에 대해 재잘거린다. 그러나, 사실은 자연의 불빛에 의존하며 살던 단순하고 자연적이던 원시적 삶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전기의 중요성, 인공지능 시대의 배터리 문제, 삶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기계적 문명에 대한 거부감...
점점 편리해지는 이 지능적인 세계가, 그 세계의 복잡한 시냅스들이, 나만 불편한 걸까?
자고 일어나는 하룻밤의 짧은 사이에도 쏟아지는 수많은 사건사고, 정보 뉴스, 이슈들을 나만 모르면 불안해지는, 정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숨이 막히는 세상에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람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마치 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며 옆 사람에게 고요하게 쉴 자유를 주지 않는 민폐인들처럼....
숲 속에서 고요히 호숫가를 바라보며 캠핑하던 순간이 행복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전세계의 수많은 해프닝들 속에서 인간 세계에 대한 본질적인 신뢰감이 무너진다. 문학의 세계에서 찾았던 인간의 진실됨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지저분한 사건사고들로 더렵혀진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버리는 거라고 백석 시인이 그랬던가.
참고로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잠시 소개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연결이 없는, 순백의 공간에서, 삶의 배터리를 충전하고 싶어진다.
'배터리'라는 단어, '충전'이라는 단어조차 쓰고싶지 않지만,
온전한 에너지의 회복을 무어라 명명해야 할까?
어쩌면, 남은 삶은 그 방법에 대한 지진한 고민들로 가득찰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