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봄

연애, 애정, 질투, 이별

by 유희경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다. 짝사랑을 말하는 건 아니다. 짝사랑은 밥 먹도록 많이 해봤다.



연애란 것에 목적이 없었다.


대학시절 아는 언니가 말하길 '연애하면 개인시간이 없어지니까 지금 학점 올릴 거면 열심히 해'라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던 나를 아주 웃기다며 배꼽 잡고 드러누웠더랬다.


남들 하는 cc도 사실 내 인생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간혹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이성을 만난다는 것에 두려움이었을까? 아니, 경험이 없으니 관심도 없고 적극적이지 않았다.





계기가 있었다.


봄이었지만 오래된 건물, 시멘트 바닥의 동방은 히터 없이는 추위를 참기 어려웠다. 동방에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앉아 그냥 흘러가는 말이었다.


"춥다"


혼잣말하는 나에게 어떤 선배가 손에 핫팩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더니 아무런 말 없이 방을 나갔다. 당황한 나와 주변에 동방사람들은 서로 눈을 돌리다 먹고 있던 밥을 마저 먹었다.


그리고 개인톡이 왔다.



대화 속에 긴장감이 있었다. 그것이 이성적 텐션이란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그 당시 고등학교 친구들 단톡방이 있었다. 위에 말했듯 나는 연애숙맥이었기에 썸을 몰랐다. 이 오빠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거 같은데 사귀자는 말이나 그런 반응이 없자 친구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중 한 친구가 조언한 방법이 있었다.


질문을 던지고 답하지 마라. 내일 아침에 확인할 것

이것이 지금 생각하면 밀당의 밀어내는 것이었구나.


다음날 학교 가기 전에 너무 놀라 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의 카톡 프사에 나와 그의 얼굴이 있는 게 아닌가!!!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게 무슨!! 얼른 사진을 클릭해 보았다.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나랑 그의 얼굴만 보이게 사진을 설정한 것이었다.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의 프로필 내용이었다.


'다 좋아'




그것이 우리 사이의 밀당의 시작이자 마지막이었다. 집 앞에 찾아온 그를 나는 망설임 없이 껴안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뜨겁진 않았던 것 같다. 멀리서 온 그가 고맙게 느껴지는 게 더 컸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는 나 말고 그의 소리가 확실했다.


그렇게 나의 첫 연애는 봄꽃잎이 다 떨어지고 나서 시작했다.





"내 어떤 모습이 좋았어?"


흔히 연애 안 해본 사람이 연인에게 묻는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보통의 여성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 외모에 신경 쓰는 편도 아니었고 항상 안경을 쓰고 다니며 화장도 피부만 하는 어디 아파 보이는 여자였다. 얼굴은 또 여백이 넓어서 작은코가 더 작아 보일 뿐이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가 고민 끝에 말했다.


"네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좋았어"



사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흔히 '네가 예뻐서, 귀여워서'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는 나를 이쁘다고 말해주는 게 아니라 멋지다고 해줬다. 나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그를 보며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이렇게 행복하구나 느꼈다.


사랑받으면 여자가 예뻐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실제로 들으면서 나도 자신감이 올라갔다.


나는 혼자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보는 눈이 생겼다.

내 얼굴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 눈이라 생각한다. 작은 코와 입에 비해 눈을 크지도 작지도 않게 길에 뻗은 눈매였다. 아침에 일어나 항상 부어있는 얼굴 말고 늦은 밤 부기 빠진 안 경황없는 눈을 그는 좋아했고 나도 좋아하게 됐다.





우리가 처음 크게 싸웠던 일을 생각하면 이것이었다. 지인들 앞에서 그가 내 어깨에 자연스럽게 올린 팔을 내가 싫다는 듯이 치웠던 것이다. 그때의 내 표정을 나는 모르지만 아마도 불쾌한 표정을 지었나 보다.


그는 아마 내가 그를 자기만큼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느꼈던 거 같다. 그 말도 맞고 그 말도 틀리다. 남들 앞에서의 스킨십이 싫어서도 그와의 친밀한 스킨십을 하기에도 이른 탓도 맞았다.



몇 시간 후 그가 아까의 내 행동에 문제를 삼았다. 단둘이 있게 된 나는 입을 툴툴 놀리며 그의 품에 파고들어 '알았어 알았어'라고 말했다. 사과 대신 애교로 무마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말 그때의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스킨십을 보이는 것에 남의 시선을 더 의식했던 게 맞았다.

너를 향한 애정이 없던 게 아냐.





나는 왜 너에 대한 믿음이 충만했을까
너는 나를 왜 믿지 못했을까




그는 나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고 싶어 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서라는데 나는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숨길 것도 없었고 그래서 그의 지문을 등록시켰다.


왜 나는 그의 폰에 관심이 없었을까? 정말 나는 그에 대한 애정이 적어서였을까?


아니면 그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항상 느껴져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내 휴대폰을 본 이후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애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아"


당최 알 수 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파고들지 않았다. 그저 신경 쓰지 않았던 거 같다. 그는 나를 좋아하니까.


나의 애정엔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길 가다 마주친 내 부모님 지인분 앞에서 나도 모르게 그의 뺨을 쓰다듬는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은 내 연애사실을 모르고 있는 중인데도 말이다.


카페에서 차근차근 바라본 그의 얼굴은 내가 항상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짙은 눈썹에 자유로운 스타일. 머리가 길게 내버려 두거나 어쩔 땐 수염을 기르기도 했다.


사실 그는 주변에서 아는 동생들도 잘생겼다고 치켜 새우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호감 가는 외모였다.


질투를 느꼈다. 그리고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에게 먼저 호감을 비춘 이성들을 거절하던 그의 눈빛을 내 눈빛을 보고 이해한 것이다.


그는 나 몰래 상처받고 '그래도 나는 너의 그런 모습조차 좋아'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는 점차 수렁에 빠진 듯했다.


그에게 의지하면서 나의 깊은 바닥도 보여주었다. 많이 당황스러워했던 거 같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얘기를 해주며 나를 다독여 줬다.


서로를 의지하며 밑바닥을 보여주며 서로를 더 알아가게 되는 그런 흐름을 나는 그렸던 거 같다.




그는 나에게 헤어지잔 말을 두 번 했다.


그중 하나를 말하자면 여행 중 나는 다치고 말았다. 생각지 못한 상처에 나는 너무 놀라 크게 울고 말았다. 정말 크게 말이다. 상처보다 큰 울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겁을 먹은 듯했다.



그는 병원을 함께 나오자마자 나를 힘들게 하는 거 같다며 이별을 고했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말을 무시했다.


진정이 된 나는 다시 예전처럼 그의 품에 파고들어 애정을 드러냈다. 그도 놀란 가슴이 안정되고 나서야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다.


그는 나를 울렸다고 생각한 거겠지만 사실 그것은 내 구멍 난 마음이 우는 것이었다.


그걸 시간이 지나니 알게 됐다.


점차 그에게 의지하는 내 모습을 보며


전과는 다르게 애정이 식어 보이는 얼굴, 간혹 실망한 표정들


그에게 집중할수록 그의 반응에 예민해졌다.





기념일에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에게 걸려온 전화가 끝나고 누구냐고 물었다.

아는 동생이라 말했다. 무슨 대화냐고 물었다.


그때 만난 여자애 아직도 안 헤어졌냐고 묻는 동생의 말을 전하며 웃으며 넘겼다.


그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나는 꼬아 듣지 않았다. 장점이지만 내가 가진 어둠을 불러일으키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의 외적인 모습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날 밥을 먹으며 내 심장소리는 두근거렸다.





그의 졸업식이 끝나고 취업을 준비하던 기간이었다.


그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어서 진로에 대한 결론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의 결정을 존중하였고 응원했다.


그와 같이 탄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님과의 대화가 있었다. 졸업 후 바로 진로를 찾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


가볍게 흘러가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내 구멍 속에 점점 파고들어 갔다.


주변에서 부르는 사람이 많은 그는 취직 후 바빠졌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밤새 술 마시느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는 안정을 찾았고 나는 불안해졌다.


바쁘게 신입사원으로 시간을 보내던 그와 달리 나는 방에서 혼자만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나는 이 수렁을 그에게 말하며 기대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수렁에 빠진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구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 구멍이었으니까. 또한 내 깊은 수렁을 그에게 공유라도 한다면 그는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바쁜 와중 가벼운 말다툼에 2주 정도 서로 연락을 하지 않을 때였다. 크게 싸운 게 아니었고 평소와 같이 만나면 없었던 일처럼 흘러가는 우리였기에 그는 2주 만에 집 앞으로 찾아왔다.


그 2주 동안 나는 혼자서 관계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그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러고 있었는지는 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알게 된 것은 그의 문제도 아닌 나 스스로의 문제였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오랜만에 본 내 얼굴을 바라보다 나의 미묘한 단어선택에 그는 금세 알아차렸다.


우리의 마지막은 참으로 단순했다.


울고 불며 서로를 잡지도 내치지도 않았다.


사실 나의 일방적인 이별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식사는 롯데리아였다. 정말 20대의 연애였다.


그는 아마 이별 순간이 애정싸움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그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점차 바빠질 테고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해결하기도 벅찼다 생각했기에...



나는 이별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했다.


머리 한 대만 때려도 돼?


그는 정색하며 안된다고 말했고 나는 그렇게 뒤돌아섰다. 그게 끝이었다.


왜 나는 그 마지막 순간에 저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그가 만약 허락했다면 진짜 그의 머리를 한대 콕 쥐어박았을까?


나는 정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말로 쥐어박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어린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머리를 쥐어박기보다 처음처럼 그를 다시 안았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하며 쓸데없는 과거를 붙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우리는 서로의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프로필에 어떤 여성분과의 사진이 올라왔다.


그때서였다.


나는 이별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진짜 이별을 시작했다.


왜 나는 그가 나를 기다려 줄거라 생각했을까?


남들이 이별 후에 이별노래만 주야장천 듣듯이 나도 그러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 단짝친구들한테 얘기를 했더니 왜 1년 후에 그러냐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그의 번호를 지우고 진정한 솔로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지속된 실패가 나를 덮쳤다.


지금 생각하면 실패가 원인이 아닌 걸 알게 됐지만


그때의 젊은 나는 스스로를 늦었다 생각하며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목표 없는 방황의 끝은 무기력이었다.


내 봄에도 꽃이 피고 지고 했지만 꽃이 피면 질 걱정을 했고 꽃이 지면 또다시 피워낼 수 있을까를 걱정하며 차가운 이불속에 나를 숨겼다.



그렇게 뒤돌아 보면 기억날 추억도 없다시피 나이가 들어 30대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