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 모두의 인생이 담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얼마전 16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곱씹어 보고픈 내용이 많아 1화부터 정주행 하며 의미를 되짚어 본다.
1화를 다시 보고 나니... 작가는 이미 첫 화에서 드라마의 주제를 스포했었네??
1화에서만도 얘기하고픈 얘기거리가 세 토막은 나왔지만, 그 중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드러난 장면에 대해 얘기를 해야겠다.
적막한 경기도 산포 <출처 넷플릭스 캡처> 집이 멀어 동아리 활동 이후 이어진 2차에서도 제일 먼저 일어나는 미정.
경기도민이 무려 주말에도 삼청동까지 가서 소개팅을 했는데 애딸린 이혼남이 나와 짜증이 난 기정.
여자친구에게 '넌 견딜 수 없이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촌스러움이 계란 흰 자 같은(노른자인 서울을 감싸고 있는) 경기도 태생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는 창희.
서울에 직장이 있는 경기도민으로의 설움과 고단함을, 남매 셋의 일상을 통해 드라마는 1화에서부터 역력히 보여준다. 남매 셋은 저 일들을 같은 날 겪고 지하철이 끊긴 자정에 강남역에서부터 집까지 함께 택시를 타고 오는데... 서울의 화려한 밤거리에서 이들이 택시 타고 경기도 산포 집까지 오는 이 간단한 장면을, 드라마는 무려 1분 30초 동안이나 담는다.
화려한 서울의 밤거리 <출처 넷플릭스 캡처>
창희의 여자친구가 얘기했던 '계란 노른자' 서울, 그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 자' 같은 경기도. 핵심은 서울이고 경기도는 위치상 서울 주변에 있을 뿐이라는 건데, 나는 왠지 이 서울이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욕망'하는 그 무언가를 대변하고, 경기도는 그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 뿐인 '대다수의 우리'를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부동산 정책 때문에 '똘똘한 서울 집 한 채'가 모두의 염원이 되며, 작년엔 15년만에 전국 집값이 10% 이상 상승률을 기록했고, 서울은 이제 웬만해선 꿈도 못 꾸는 가격으로 갭이 벌어졌다. 내 친구가 4년 전 사려고 했다가 와이프 반대 때문에 못 샀던 4억 하던 강북 아파트가 지금은 13억 한다니까 말 다 했다.
집값은 뭘로 만들어지나? 수요다. 2021년 서울의 인구밀도는 15,699명(㎢)으로, 이는 경기(1,335명)의 12배이고, 경북(139명)의 112배, 제주(364명)의 43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치이다.
한국의 상위권 대학, 대기업의 본사들, 심지어 번화가까지 모두 서울에 있는 걸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요즘은 부동산 뿐만 아니라 주식, 채권, 심지어 식물, 운동화까지 아주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야말로 투자의 시대이다. 유튜브에 '투자'라고 검색하면 '월급 200으로 0년만에 1억 만들기', '연수익 17%? 2030이라면 이 투자는 꼭 하셔야 합니다', '워킹맘 1400만원으로 1년 만에 11채 매입한 이야기' 등 다양한 사람이 돈 버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마치 나만 빼고 다 돈을 잘 버는 것처럼. 유튜브의 그들의 행복한 미소처럼, 나만 빼고 다들 행복한 것처럼.
인스타에는 나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주부가 팔로워가 50만이 넘고, 운동만 열심히 한 것 같은데 팔로워가 10만이 넘고 그 브랜드를 이용해 사업을 펼친다. 그리고 그들이 권한다.
나처럼 하라고! 지금 당신만 시대와 트렌드에 뒤떨어져 있다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과 애정' 욕구가 실현된 이후, '존중'과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명예, 존경 등에 목마르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돈, 권력을 추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이룬 사람들을 우리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며 그런 성공을 갈망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충만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처럼 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우리처럼, 그래서 창희도 이런 대사를 읊조린다.
"뉴욕까진 아니어도... 서울에 태어났으면... 하다 못해 왜 계란 흰 자에 태어나가지고."
미정은 반문한다.
"서울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
다시 바꿔 말하면... "우리가 욕망하는 그거 가지게 되면, 우리 행복할까?"
욕망하는 무언가(돈, 권력)가 생긴다고 삶의 본질이 달라질까?
상사에게 대차게 까이고 카페에서 일하려고 노트북을 펴는 미정의 대사이다.
"당신과 함께 여기 앉아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그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일이 돼요. 견딜만한 일이 돼요. 연기하는 거에요. 사랑받는 여자인 척,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 여자인 척. 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그래서 편안한 상태라고 상상하고 싶어요. 난 벌써 당신과 행복한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당신 없이 있던 시간의 지치고 힘들었던 것보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는게 더 기특하지 않나요?"
그리고 "서울에서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라는 질문에 미정이 자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난 어디 사나... 똑같았을 거 같은데. 어디 사나, 이랬을 것 같아."
작가는 이미 1화에서 미정의 대사를 통해 다 얘기했던 것이다. 서울에 산다고, 세상이 얘기하는 투자로 성공한다고, 넘치게 돈이 많고 따르는 사람이 많은 그것이, 행복의 '필수요소'는 아니라고.
(이는 돈이 주체 못할 정도로 많아 장롱서랍에 돈다발을 넣고 살지만 알콜중독자인 자경의 삶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그지 같은 일도 아름다운 한 장면이 될 수 있는 힘,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힘, 행복한 그 시간을 살게 하는 그 힘은 바로 '사랑'에 있다는 것. '관계'에 있다는 것.
나를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누군가가 있고, 나 또한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라고.
돈과 사랑을 이분법처럼 구분지어서 가난해도 사랑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극단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변의 누군가와 관심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통해 서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그를 통해 풍요로운 충족한 감정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삶의 질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질이다. <내가 만난 1%의 사람들>
하루를 걸작으로 만들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성장에 투자해야 한다. 서로 시선이 마주칠 때 뭔가 성공적인 것들이 태어난다. 타인의 시선을 외면하거나 피하는 사람은 이어짐이 주는 엄청난 기회를 얻지 못한다. <마흔이 되기 전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 가운데 하나는 뭔가 더 노력하지 않아도, 뭔가를 숨기지 않아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그 행복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당신과 나 사이>
성공을 이룬 많은 사람들의 에세이에서, 생각보다 '사랑'과 '관계'에 집중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는 기술적인 방법보다는 개인적인 자기관리, '나'를 넘어서는 힘에 대해 강조하고,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사랑하라'고 한다.
아직 내가 평안함에 이르지 못했다면, 가득 채워지지 못했다면... 그건 과연 채워지지 않는 월급 통장 때문만인건지 반문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