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치 Jan 28. 2024

눈이 내리던, 눈물이 내리던 너의 졸업식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날은 결이 좋은 회색 코트와 가장 좋은 가방을 들어야지. 아직 발목이 아프지만 예쁜 신발도 신을 거야.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 어떤 착장을 할까 고민했었더란다. 그러나 막상 그날은 두툼한 조거팬츠에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와 눈썹까지 가린 비니를 쓰고 눈 속을 헤치며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래도 졸업

등교 거부일이 하루하루 쌓여갈수록, 학교에서 오는 연락이 잦아질수록, 아이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게 될수록 나의 심장은 요동치고 편한 호흡이 힘들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아픈 아이를 챙기는 게 우선이었지만,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날짜를 더하고 빼보다 어느덧 쭉 결석을 하더라도 졸업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지금은 아이 건강이 우선이고, 어머님께 등교 스트레스라도 덜어드리고 싶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졸업까지 학교를 쉬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졸업식이다.


졸업식에 가겠다던 아이는 졸업식 며칠 전에 마음을 바꾸었다. 도저히 친구들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졸업식이 중요하다면 중요하겠지만,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도 억지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싶어 동의했다. 담임 선생님께서도 서운해하셨지만, 우리 결정을 이해해 주셨고 아침에 아이 짐을 챙겨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짐을 들어야 하니 우산도 쓰지 않은 채로 완전 무장하고 펑펑 내리는 눈 속을 걸어 학교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눈이 참 많이 온다.


텅 빈 교실, 아이의 책상 위엔 졸업장과 앨범, 그리고 아이의 소지품을 담은 가방이 놓여있다.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아이 자리에 앉아 교실을 둘러본다. 힘들게 한 전학인만큼, 아이도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겠지. 끝까지 할 수 없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무리 짓지 못한 아이의 마음이 가장 아플 거라 그 마음이 안쓰러워 눈물이 차 오른다. 


'축 졸업! 이제 졸업! 졸업 축하해! 얘들아 잘 지내! 6년 동안 진짜 수고했다!...' 등의 메시지가 가득 쓰인 칠판에 빠뜨리지 않고 아이 이름을 써준 반 친구들이 고맙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들어온다.


"아, 꼬마화가 어머니세요? 선생님 안 계신데... 꼬마화가 오늘 안 와요? 어디 아파요? 감기예요?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세요."


참 예의 바른 친구의 안부에 또 한 번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그래 꼭 전해줄게. 


갑작스러운 폭설로 출근이 늦어진 선생님은 못 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얼굴 위에 쏟아지는 눈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섞여 내린다. 아이처럼 소매로 눈을 닦으며, 원래 졸업식은 우는 거니까 괜찮다며, 하얀 함박눈이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가려주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힘들어하면 아이가 미안하잖아. 과거는 잊고 앞으로를 잘 준비하면 돼.'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에게 졸업 축하한다며 작은 프리지어 다발을 주고 안아 주었다.


"프리지어 꽃말은 '새로운 시작'이래. 우리 새롭게 시작해 보자."


힘들게 하는 졸업이지만, 아이의 6년은 축하받을 만하다. 예민한 기질로 작은 자극에도 따가웠을 아이도 스스로 노력했을 테니 말이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


휴가를 낸 김에, 그동안 외출이 힘들어 미뤄왔던 자궁경부암 접종도 하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동네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에 들러 검사 일정도 잡았다.


여기까지 따라나선 것만도 큰 성과다. 앞으로 이렇게 천천히라도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바로잡아나가며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갖고 자랄 수 있게 힘을 다해야 한다. 졸업식에 학부모로서 참여하지 못했다는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다. 


졸업 축하해, 꼬마화가

고생했어, 나 그리고 울 엄마




이렇게 아이는 졸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영어와 수학을 못 따라가겠다 하여 집에서 과외 수업을 받고 있고, 미술학원 중등반 수업을 착실히 듣고 있다. 여전히 밤에 온라인 친구들과 노느라 늦게 자 까칠한 컨디션이지만 병원의 심리 검사까지 모두 마친 상태이다. 다음 주 결과에 따라 치료가 들어갈 것이고, 좋아질 거라 희망을 가져본다.


등교 거부 매거진에 새로운 글을 올릴 일이 없길 바라지만, 혹시 그런다 하여도 작년처럼 모든 걸 다 잃어버린 채 괴로워하진 않을 셈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엔 아직 내 마음의 체력도 회복된 상태가 아니라 힘들지만, 좀 더 냉정히 아이 치료에 집중하는 걸 우선으로 하자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전학 전 담임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남기고 싶다. 신나는 졸업을 했더라면 모시고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하고 싶었는데 그러진 못했다. 선생님도 꽤 당황스러우셨을 텐데도 나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시려 노력하신 걸 잘 알고 있다. 내 자식인데도 하루에 여러 번 원망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아이가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여러 노력을 하시며 바로 잡아 주시려 했던 그 마음이 정말 힘이 되었다.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매거진의 이전글 치앙마이, 너와 나의 치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