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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Feb 24. 2019

꼬마화가와 길치; 나트랑으로 떠나다 #첫째 날

엄마와 9살 딸의 여행 준비

올해는 매년 초 리셋되는 복지포인트를 헬스장에 기부하지 않고 의미 있게 쓰기 위해 바로 비행기표와 호텔을 질러버렸다. 다른 곳에 비해 그나마 덜 알려진 베트남 나트랑으로..


2월은 아이와 나의 겨울 방학이 끝나는 시점, 새 학기가 곧 시작되기 전 그리고 내 생일이 있는 달이라

어디든 떠나고 싶어 지는 달이다. 준비하는 게 힘들고 둘만의 여행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추진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얻는 게 많기 때문에..


원래 여행 계획과 동선 등을 미리 계획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환전만 해놓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고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극도의 집중력이 발휘될 것이므로..


그러던 중 정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고, 일주일을 고민으로 통째로 날리고 나니 헛 이틀 후 여행이구나!

 


여행 준비


여행 준비에 머리가 하얘졌는데 아주아주 감사하게도 교회에서 하는 1박 2일 성경학교에 가고 싶대서 보내니 짐 쌀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여유롭게 짐 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라던 생각은 오래간만에 온 육아로부터의 자유의 유혹에 져버렸다. 결국 탱자 탱자 놀다 밤이 되어 드디어 짐을 싸기 위해 여름옷을 쫙 꺼냈는데.. 울리는 전화벨 소리..


아이는 결국 처음 하는 외박을 견디지 못하고 밤 11시에 돌아와 쫑알쫑알 수다를 떨다 잠이 들었다.


그럼~ 짐은 당일에 싸야 맛이지.


다음 날 아침, 성경학교 이틀 째 날을 위해 아이는 교회에 가고.. 이제야 짐을 싸려 하니 멘붕.


아이 여름옷이 아직 맞는 게 있었는가..
있더라.. 아주 많이.. 패스


속옷도 사줘야 할 거 같은데..

그동안 너무 신경을 못썼네.. 4살 때 사줬던 팬티들이 아직도 옷장에 수두룩. 팬티를 사야겠구나.


겨울 내 부츠만 신었으니 운동화도 사야 해..

그새 발이 커져서 가을까지 신었던 운동화는 너무 작아 운동화도 사줘야겠구나.


아이를 교회에서 픽업해 속옷-운동화 순으로 쇼핑 리스트를 정하고 후다닥 나갔는데 우리 동네 유일무이한 어린이 속옷 집에 갔더니 새 학기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사이즈가 다 빠졌다네.

갖고 갈 수 있는 팬티는 네다섯 장 남짓.. 그러던 중 갑자기 딸이 하는 말이 "있는 거 대충 입자!".  

오올~ 아이의 쉽게 볼 수 없는 쿨한 모습에 뿌듯해하며 가볍게 운동화 매장으로 이동을 했다.


대학가라 그런지 유일하게 키즈 사이즈 운동화를 살 수 있는 매장도 역시 한 개뿐이다. 그런데 어찌나 사이즈 없는 것들만 골라서 고르는지.. 난 얼른 가서 짐을 싸고 출발할 생각에 다른 모델로 엄청 설득했으나.. 결국 고집에 두 손 들고 첫 번째 맘에 드는 건 주문을 하여 급한 불을 끄고 세 번째 맘에 드는 걸로 간신히 구입을 했다. (세 개 중에 고른 거니 사실 제일 맘에 안 드는 것)

시간은 흘러가고 입 꾹 닫고 고집을 피우니 정말 난감했었는데 공항 도착하자마자 "지금 보니 운동화 예쁘다~" 하는 딸. 병 주고 약주시는군요.


아이에게 가는 길에 엄마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준비를 미리 못해 얼른 짐을 싸서 공항에 가야 하니 짐 싸는 거 궁금해도 질문하지 않기로 (참견하지 않기로) 약속을 받고 집으로 갔다.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맘이 급한 상태.


그러나 역시 캐리어를 열자마자 쏟아지는 아이의 지대한 관심.


내가 약을 지퍼백에 담으면 그 약의 이름을 써주겠다며.. 그리고 곧, 해열제에 '제'는 아이야 어이야? 엄마 영양제 이거 이름은 뭐야? 그냥 '약'이라고 쓰면 안 되겠니??


편한 슬리퍼 말고 꽃 달린 예쁜 샌들을 넣고 싶다.

예쁜 원피스를 챙겼냐. 한 번 보자.


결국 엄마가 출동하셔서 아이를 놀아주신다고 데려가고 나서야 짐 싸기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정말 출발도 전에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상태.


그래도 기분 좋게 출발하면서 엄마가 힘들어 잠이 올 수  있느니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가기로 합의 보고 이문세 노래를 들으며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아이는 차에서 바로 잠이 들고, 오늘 문세 아재의 노래는 어찌나 요즘 내 심정과 같은지.. 해 지는 하늘과 좋은 노래에 푹 빠져 "아 우리나라도 이렇게 멋지구나!" 하며 감상에 젖어 인천공항 입성... 하려던 찰나..

길에 새겨져 있는 데로 주차장으로 방향을 틀었고 전에 봤던 주차대행 분위기와 달라 입구에 서 계신 직원분에게 여쭤보니 주차장을 통과해 그대로 나가 다시 물어보라고.. 익숙하게 통과하고 물어보는데 순간 머리가 띵~ 작년 6월 방콕 가던 날과 같은 상황이네.


직원분이 말해준 대로 여객 터미널 가는 방향으로 틀어 쭉 가니.. 서울 가는 길이 나온다.  급하게 2 터미널로 틀고 신호 걸렸을 때 다시 네비 찍고.. 힘들게 도착했다.


정말 방향감각을 못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평소 거의 모든 상황에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긍정적인 성향 때문인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니.. 혼자 자책하고 있는데 자다 깬 아이가 뒤에서 하는 말이 " 엄마는 별명(길치)이랑 어울려" 이러고 뒤에서 놀리고 있다.


그래. 오래 걸렸어도 공항이다.

보안 검사에서도 좌우를 헤매다 새치기를 당하니 "난 엄마가 길치라 힘들어" 불난 집 부채질하는 딸.

누구 덕에 편하게 여행 다니시는데 너무 하네~


그래도 여유롭게 체크인하고 부탁받은 면세 심부름도 하고 라운지에서 푹 쉬니 이제야 여행이 실감이 된다.

라운지에서도 그림 그리기
맨날 물리면서도 뭐가 좋은지. 또 땅콩이 그리기.

나트랑 도착


아이랑 영화 한 편 보고 잘 자고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지옥의 입국 심사라 걱정했지만 앞자리라 빨리 나가서 그런지 정말 빠르게 통과해 특별한 대접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지만.. 짐은 왜 안 나오나요.


한참 기다리자 큰 캐리어가 나왔고 아이는 자기가 고른 러기지택이 달려있는 작은 캐리어가 안 나오자 앞에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왠 아주머니가 거칠게 달려가 아이를 밀치고 가방을 들어 올리며 아이가 부딪히길래 얼른 아이를 데려왔다. 도대체 저 몰상식한 여자는 누구인가 보니 (난 일반화하는 걸 정말 싫어하지만) 나트랑 여행 카페에서 자주 등장하는 옆 나라 사람들.. 아 정말 안 그럴 순 없는 건가요? 아이를 밀쳤음에도 내가 왜? 하는 표정으로 아이 엄마인 나와 아이컨택하던 그녀.. 유 윈. 남자 동행은 남의 캐리어를 끄집어 택을 다 뜯고 내꺼 아니네? 하는 표정으로 다시 올려놓던..


가방도 너무 늦게 나왔고 그들 덕에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밝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계시던 호텔 직원분의 미소에 그리고 따뜻한 날씨에 아.. 드디어 도착했구나..하며 기분이 풀어졌다.


공항 앞에서 직원분이 밴을 가지러 간 사이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밀려드는 담배 연기에 코를 쥐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세상엔 담배를 피우는 사람, 안 피는 사람이 있고 여기는 피워도 되는 구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조금만 참자.. 참자.. 할 수밖에.. 그러나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힐 뿐이고, 밴은 늦게 오고 저 사람들도 비행기를 오래 탔으니 피고 싶었나 봐~ 하는 말의 설득력은 제로였다.


유난히 담배 연기에 민감한 아이와의 여행이 걱정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은 특히 흡연이 자유롭다던데..


Private car 서비스는 49불부터라  29불짜리 Shared Van으로 신청했었는데 우리밖에 없어서 편하게 잘 타고 왔다. 아무래도 베트남은 처음 가는 거고 새벽에 도착하는 거라 택시나 그랩보다는 호텔 픽업 서비스를 신청하길 잘한 듯하다.


알아보다 알게 되었던 유명한 호텔들이 길에서 많이 보이고 40분여를 달려 도착한 우리의 숙소, 에바손 아나만다라.


그저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고 시내 접근성이 좋다고 해서 4일을 몽땅 다 같은 곳으로 예약했다.

보통 이틀, 이틀 이렇게 나눠서 많이 할 텐데.. 일단 우리는 힘들어 지치는 순간 둘 다 변신하기에 최대한 체력과 시간을 아끼기로.. 나의 귀차니즘이 한몫한 것도 있고.


조금 비싼 편이긴 했지만 조용하고 아담한 리조트가 맘에 든다.

카드키가 아닌 열쇠. 일회용 어매니티가 아닌 각각 병에 따로 담아 놓은 목욕용품들..

백옥 같은 두꺼운 샤워가운이 아닌 누리끼리한 자연의 향기가 나는 샤워가운.  

대나무 슬리퍼.


호텔 구경하느라 잠이 깬 아이는 잘 생각을 안하고 난 공항 자판기에서 뽑아 온 맥주를 한잔 하고 얼른 재우고 싶을 뿐이고.. 결국 무서운 엄마 목소리 내어 아이를 재우게 되었다.



심란한 마음 상태에서 온 여행이지만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쩜 더 좋은 상황일지도 몰라.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자. 하며 조식까진 몇 시간 안 남았지만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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