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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Aug 24. 2021

#02. 모녀 캠핑 첫 출정!

텐트와 탱고 한판 추시겠어요?

맥시멀 한 캠핑 준비를 하면서 그 준비가 끝날 때쯤 바로 떠나기 위해 캠핑장도 알아보았었다. 

https://brunch.co.kr/@puppy3518/44

나를 캠핑으로 이끈 유튜버들을 보면, 차박은 주로 노지였고 텐트를 치는 캠핑은 차박이 아닌 따로 마련된 데크에서의 캠핑이었기에.. 유튜브를 통해 딱 맞는 캠핑장 정보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오토캠핑장, 차박 캠핑장 등으로 검색하면서 우리의 첫 캠핑을 장식할 장소를 물색했다.


조건은..

1. 긴 차체(대략 5미터 20센티) + 텐트 (대략 4미터)이니 도킹했을 때 세로 9미터 이상의 공간

2. 그 외 없음 (오로지 텐트를 도킹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포천에 포시즌스 오토캠핑장!

전화로 도킹이 되는지 확인하고 길이가 9미터가 나오는지 재차 확인했는데도 100%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만약에 길이가 짧으면 어떡하지?

차 다니는 길로 삐쭉 튀어나와서 다른 차들 진로에 방해가 된다면? 다시 돌아와야 하나..


게다가 날씨!!

첫 캠핑인데 야속하게도 출발 며칠 전 비로 바뀐 예보..

텐트 칠 줄도 모르는데, 비 오면 텐트는 안 새려나, 젖은 텐트는 또 어찌 갖고 와야 하나..


다행히 당일 오후 비가 그치는 걸로 예보가 바뀌었다.

호텔로 여행 다닐 땐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었는데 말이다.


 



2021.3월 우리의 첫 캠핑


엄마와의 첫 캠핑을 썩 신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부하지 않은 것만 하더라도 무한 긍정의 표현이라며 정신승리 법을 동원하여 길을 나섰다. (물론 어느 정도의 짜증은 기본 옵션입니다. 11살 딸..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겠죠. 인사이드 아웃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겠죠.)


아이와 단 둘이 차로 멀리 이동하는 게 꽤 오랜만인 듯하다.

평소 오래된 팝이나 가요를 듣지만, 아이 취향에 맞춰 아이유 노래를 틀었더니 아이 기분도 조금씩 좋아지는 듯하다. 아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노래를 지어서 부르고 농담도 하고 캠핑장에 도착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아이와 둘이 여행을 자주 다녔었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엄마도 함께 다니긴 했지만 20년 2월 베트남 여행을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터져 해외여행이 힘들어졌고, 가까운 곳이라도 자주 다니기엔.. 무엇보다 아이와 할머니의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 상태였다. 솔직히 내 기준에서 버릇없는 아이와 참지 못하고 표현하는 엄마(외할머니), 둘 다 누구의 편도 들어주기 힘들었다. 그저 가끔 엄마와 아이가 떨어져서 각자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낫겠다 싶을 뿐. 그리고 자라는 중인 아이가 어른들에게 조금 더 공손해질 수 있게 가르쳐주는 게 맞다 생각했다. (아직도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딸과의 첫 캠핑,

처음 차에서 자는 날,

처음 텐트를 쳐 보는 날,

그동안 지른 장비도 처음 꾸며보는 날,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했으며, 혹시 실패하고 집에 돌아가게 될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도착한 캠핑장의 모습은 내 걱정들과 상반되게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었다.

원래 텐트 치고 거주하는 것같이 편안한 차림의 사람들, 유튜브 영상에서 많이 봤던 예쁘고 감성적인 텐트들이 아닌, 정말 현실의 아웃도어 전문점의 옷 컬러들을 조합해놓은 듯한 알록달록 텐트들.. 

예쁘지 않은 양은 냄비를 들고 돌아다니는 친근한 모습..


그리고, 빠듯하겠다 싶었던 사이트의 넉넉한 공간까지..


음.. 할 수 있겠는걸!

우선 계획대로 텐트를 도킹할 만큼 공간을 두고 주차했다. 시크한 딸은 차에서 나올 생각이 없고, 오히려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잔소리를 할 테니 더 잘되었다 싶어 혼자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유튜브를 보고 공부를 했던가..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텐트는 너무 크고 무거웠으며 분명히 끈이 있는 곳이 차랑 연결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한쪽을 연결하면 한쪽이 흘러내리고.. 3월의 서늘한 날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강한 여자. 나보다 더 작고 여리한 여자들도 하던데 다 요령이라며.. 씨름하다 보면 요령을 깨우치겠지 하고 한 시간 가량 텐트랑 씨름을.. 아니 탱고를 여러 판 추고 났더니 어색하게나마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르사 텐트 도킹을 검색하다 이 글을 보는 분이 없길 바라며..

본체를 연결할 때 끈 두 개 있는 곳을 차 쪽에 두고 바퀴에 올라가 끈 한쪽을 들어 차 세로바에 대충 묶고, 나머지 한쪽을 반대편에서 끌어올려 모양을 잡은 뒤(트렁크 문을 잘 덮어서) 잘 묶고, 다시 돌아가 첫 번째 묶었던 곳을 다시 잘 묶으면 절반은 완성이에요. 나머진 폴대 끼고 팩 박으면 끝.(해봤다고 아주 쉽게 얘기하는 중)
텐트와 탱고 추던.. 집에 가고 싶던 그 순간.. 



드디어 집 완성!


남들 다 하는 거고 그 누구도 지켜보지 않았지만, 스스로 완성했다는 것이 기뻤다.

아이는 시큰둥하게 그제야 텐트 안으로 내려와 둘러보기 시작했다.


앞에 개울이 있어 아이들이 노는 것 같았고, 아이는 관심 없는 듯 하지만 슬쩍슬쩍 궁금한 지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짐을 정리했다.


막상 해보니 유튜버들처럼 예쁘게 정리하는 건 무리였고, 점심이 늦어진 아이에게 얼른 점심을 해주어야겠단 생각에 급하게 식사부터 준비했다.


정리 안된 상태에서 음식 준비
아이가 좋아하는 빠네 파스타를 준비하고 나 혼자 뿌듯 (물론 밀 키트)


평소 요리도 잘 못하는 데다가 재료 하나하나 사고 다듬을 여력이 없을 것 같아 준비한 밀키트가 아주 고마운 순간이다. 배고팠는지 아이는 맛있게 먹고, 나는 이제 운전할 일 없으니 맘 편하게 맥주를 한 캔 하며 캠핑을 즐겨보고자 했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차에 잠자리를 세팅해서 아이가 차에서 편하게 쉴 수 있게 만든 후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고 깨니 어둑어둑.. 


이제 저녁 준비 시작..


간단하게 스테이크를 준비했고, 소고기를 좋아하던 때라(지금은 안 먹는다는 얘기ㅠ) 밥과 함께 맛있게 먹고, 가져간 달고나도 만들고 짧지만 즐겁게 저녁을 보냈다.


아이랑 누워 이런저런 얘기하다 아이가 잠들고, 혼자 와인과 함께 자유 시간을 즐기려는데 춥다..


3월의 캠핑장은 작은 히터 하나만으로는 아직 추운가 보다. (올해는 난로를 꼭 사야 한다는 의미)

게다가 비도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텐트 젖는 건 이미 포기.. 어떻게든 되겠지.

나 말고 저 수많은 텐트들이 다 젖고 있으니.. 텐트는 원래 젖기도 하는 건가 봐 (당연한걸 이땐 몰랐다.)


11시도 되지 않았는데 잠이 온다.

캠핑 뭐 그럴싸할 줄 알았는데..

오후에 도착해서 피칭&세팅하고, 점심해 먹고, 설거지하고, 잠깐 자고, 저녁 해 먹고, 또 설거지하고, 술 간단히 하니 끝났다. 그래도 가슴속 깊이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올라온다.




차에서 자는 첫날밤

정리하고 들어가니 아이는 쿨쿨 잘 자고 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나도 금세 잠이 들었다.

다만, 디바스토 무시동 히터를 잘 설치하긴 했는데 열기 출구를 조절하지 않았더니 그게 내 머리로 그대로 와서 밤새 머리카락이 튀겨지는 느낌이 들고, 귀 안마저 건조해져서 너무 힘들었다. 나중에 대표님께 물어보니 열기 출구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흑.


그래도 히터와 좀 떨어져 잔 아이는 밤새 푹 잘 잤고, 아침에도 기분 좋게 일어났다.

  

대략 이런 분위기. 아이가 자고 있어요. 쉿.
우리를 따뜻하게 해 준 히터.. 다만 내 머리카락은 튀겨졌음


캠핑 다음 날 아침은 가래떡을 구워 먹고 초보라 두 시간을 정리해서 집으로 출발했다.

일하고 먹고 치우고 일하고 먹고 치우고 자고 먹고 치우고 일하고.. 반복이지만 이 성취감 뭐지? 하며 기분 좋게 아이와 수다 떨며 캠핑 마무리..



사실, 관광을 한 것도 아니고..

3월이라 자연경관이 훌륭한 것도 아니라 그저 먹고 일하다 온 캠핑이었다.

그러나 까다롭게만 느껴졌던 아이가 별말 없이 즐겁게 밖에서 밥 먹고 차에서 잠자고 하는 걸 보며, 앞으로 우리의 캠핑이 우리 관계에 더 좋은 영향이 되겠구나 하며 한없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벅차올랐던 기억이 난다.

집에 있었으면 각자 할 일 하느라 이런 시간 못 보냈을 테니 말이다.


비에 젖어 무거웠던 텐트를 말리는 것도 생각보다 쉬웠다. (옥상에 그냥 펼쳐놓으니 마름)

하루를 떨어져 있던 엄마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진 것 같아 종종 이렇게 우리 모녀가 엄마에게 쉴 시간을 주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의 후기.. (일기에서 발췌. 글씨는 자기가 원할 땐 잘 쓰고, 일기와 숙제에는 흘려 쓰고 그럽니다..)


이하 번역 서비스)

엄마가 캠핑 간다고 몇천만 원을 써서 차도 바꾸고 캠핑에 갔다. 그냥 돈 내고 고생하는 거다. 개울가가 있는 시골이었는데 어린애들이 잠자리채랑 그물망을 들고 개구리를 잡고 있었는데 개구리 알만 잡고 끝났다. 그리고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또래가 엄마가 거의 맨날 얘기했었던 불멍 얘기를 하고 있었다. 걔도 세뇌당했나 보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는데 빠네를 굳이 만들어 먹었다. 평소라면 시켜먹었을 텐데 시골이라서 그런가 보다. 




췟. 좋았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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