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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27. 2021

엄마는 네 감정의 하수구가 아니야

우리 모두 노력이 필요한 시기

매주 화, 목, 금 일주일에 세 번, 등교하는 날 아침이면 집안에 싸늘한 긴장감이 돈다.

오늘은 아이가 일어나면 어떤 기분일까?

제발 오늘은 조용히 학교에 가야 할 텐데..



08:00 전쟁 알림

아이를 깨워야 할 시간, 몇 가지 규칙을 떠올리며 오늘은 어떻게 깨워볼까 궁리한다.

8시 5분 전도 안된다. '7시 55분 = 7시'라는 아이의 시간 개념을 지적해 가르치고 싶은 맘 가득하지만, 최대한 싸울 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해 시계에 8시가 찍히고 나서야 깨운다.

평소 깨우는 내 목소리가 맘에 안 든다며 짜증을 내고 시간을 끄니,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이를 만지는 것은 금물! 허락 없이 만졌다며(엄마가 딸 머리 쓰다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이야) 짜증을 낼 기회를 잡으니 최대한 터치하지 말자.

아무리 부드럽게 깨워도 내 속마음이 목소리에 묻어 있는 건지, 짜증내고 버틸 기회를 잡는 건지 최근엔 그마저도 기분 나쁘다 하여 조용히 좋아하는 강아지를 옆에서 놀게 하고(강아지가 깨우도록) 옆에서 연필을 깎아 본다.


결국, 찡그린 미간에 양 눈썹이 붙은 얼굴로 일어나는 모습을 보니 오늘도 글렀다 싶다. 이유는 연필 깎는 소리가 기분 나쁘다는 것과 본인 방에 함부로 들어왔다는 것.

노크를 했으나 네가 자고 있었고, 문 열린 방에 깨우기 위해 엄마가 들어올 수 있지 않니 해도 이미 짜증이 나있는 아이에겐 불난 집에 휘발유만 붓는 격이다.


아침도  먹고 잠이   기분 나쁘다며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오늘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줘보기로 한다. "엄마일해야 해서 이제 샤워할 거야. 엄마 씻고 나올 때까지  깨고 준비했으면 좋겠어." ""


08:30 전쟁 시작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아이는 같은 자리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고 엄마(외할머니)는 포기한 듯이 쳐다만 보고 계시다.

"엄마 씻고 나올 때까지 준비한다고 했지? 아직도 잠이 덜 깬 거야? 그런데 휴대폰은 왜 보고 있지?"


휴대폰을 뺏었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뺏기지 않으려고 손아귀에 힘을 준다. 그러나 이번엔 나도 오기가 생겼다. 학교 가는 날만 되면 온 식구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아이에게 이번엔 제대로 엄마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무엇보다 준비해야 할 시간에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는 건 뺏어야 할 정당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30분 동안 아이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 내용은 너무나 슬프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심지어 아이가 무서워질 정도여서 다시 떠올리기가 힘들다.

그 순간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아직 못 찾았다. 다만, 상대하면 더 자극시키는 것이라는 것만 경험을 통해 깨달았을 뿐.


09:00 등교 포기

재택근무 중이라 9시부턴 일해야 한다. 마침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집에 엄마가 계시니 우선 미팅에 참석했다. 내가 마이크를 켜야 하는 순간에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에 미팅을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나 좀 나갔다 올게. 꼬마화가는 내버려두어. 학교가든지 말든지 내버려두어봐."


하아.. 엄마..

계속되는 미팅, 아이가  등교하지 않냐는 담임선생님의 문자, 간간히 들리는 아이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까지.. 순간 내가  개로 나뉜 느낌이 들었다. 겉모습의 나는 일을 하고 있고,  안의 나는 울고 있었다.


10:30 미안해 의식

아이가 짜증과 분노를 다 쏟아내고 나면 늘 하는 의식 같은 게 있다.

과자나 빵에 색소나 소스로 "미. 안. 해"라고 써서 조용히 나한테 갖다 주는 것.

그러면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아까 마음이 어땠었는지, 네가 그럴 경우 엄마 마음이 어떤지 등을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그리고 앞으로 그러지 말자~라고 약속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반전은 더 높아진 난이도로 시련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


오늘도 역시, 아이가 무언가 들고 들어온다.

정체모를 빵 같은 것에 색소로 "미. 안. 해"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이번엔 아이를 안아주고 싶지가 않다.

하수구에 오물을 쏟아내듯 못된 말들과 분노를 나에게 다 쏟아내고, 끔찍한 말들로 사람을 후벼 파 놓고 이런 것들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 이제 그만하고 싶고 또 이렇게 넘어가면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때 더 힘들어질 수 있겠다 싶었다.

과거에 분노조절장애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 때문에 힘든 경험이 있다.
전문가의 상담과 주위의 노력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상담도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책을 통해 알게 된 용어가 "감정의 하수구"였다.
분노를 잘 폭발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에 비해 항상 화가 많이 차있어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화가 폭발하며, 특히 본인들이 정해놓은 "감정의 하수구"에 그 분노를 쏟아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수구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게 되는지에 대해 공감하며 읽으며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 사람의 "감정의 하수구"이며, 나와 결혼하기 전에는 그의 어머니가 "감정의 하수구"였다는 것을..

그래서, 이 순간을 넘기고자 아이를 안아주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자~ 하고 넘어가면 아이가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내가 바로 그의 어머니가 될 수 있겠단 생각에 아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네 친구가 아니야. 이건 '미안해'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잘못했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네가 앞으로 학교 갈 때 이러지 않겠다는 것과 할머니와 엄마에게 소리 지르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지 않으면 휴대폰은 돌려주지 않을 거야"


11:00 잠시 휴전

아이도 진정이 되었는지 이제라도 학교에 가자하니 순순히 따라나선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니 빈 집의 공기가 참 눅눅하고 슬프다.

맘 잡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앉았으나 창피하다고 수업에 안 들어가고 버틴다는 선생님의 문자가 오고, 눈물이 왈칵 터져 버린다.




아이가 걷고 나서부터 인가..

집에 있다 외출을 하기 위해 준비하려면 그렇게 힘이 들었었다.

그러나, 막상 나가면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기에 그 누구보다 재밌게 놀고 좋아하면서 옷을 갈아입혀야 하는 그 순간, 양말을 신겨야 하는 순간.. 순간순간 어찌나 짜증이 심한지.. 그래도 크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아기도 마찬가지..


그래도, 저학년까지는 아이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는 노력을 좀 한다면 지금보다는 수월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 안 되는 논리를 펼쳐가며 따지고 소리를 질러대니 나도 사람인지라 표정부터 굳는 걸 막기가 힘들다. 내 굳어진 표정은 아이의 분노에 불쏘시개가 된다.




이렇게 불편하게 연휴가 시작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혼자 등산도 했지만, 산을 내려온 순간 다시 어떻게 아이를 잡아주어야 할까.. 고민은 시작되었다.  그러다 또다시 사건은 터지고..

휴대폰을 다시 받고 싶으면 앞으로의 계획서를 내라 Vs 못 내겠다 > 짜증 > 분노 + 억울 > 폭발


아이가 쏟아내는 저 말들이 진심은 아닐 거라며..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아서 이 악물고 참았다.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면, 아이는 다 엄마에게 배웠다며 억울한 소리를 해댈 것이고..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장난을 친다면, 아이는 나를 우습게 대할 것이라..

그냥 무시하는 것으로 보이게끔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심해 차마 글로 쓰지 못하는 그런 말들을 사랑하는 딸에게 듣는 그 심정이란..

그럴수록 마음을 더 강하게 먹으려 노력했다.


이번에 아이에게 꼭 약속을 받아야겠다. 그리고 스스로 지키게끔 해야겠다.

아파도 참자.


옆에서 듣다 못한 엄마는 이모네 가서 지내다 오신 다며 집을 나가셨다.




최소한의 보호자 역할만 하며 대면 대면하게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 테이블에 무언가 써놓은 걸 발견했다.


1. 8:30분까지 준비를 끝내고 10분 동안 유튜브를 본다.

2. 늦어도 8:40분까지 준비를 한다.

3. 스크린 타임에 불만 갖지 않기

4. 할머니, 엄마한테 짜증 내지 않음

5. 병원 같은 곳에 열심히 참석하기 (상담을 받기로 한 것에 대한 동의)

6. 이것들을 어길 시 압수


이번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휴대폰을 돌려받기 위해 억지로 쓴 것이라 할지라도, 엄마에게 해선 안 되는 말까지 해가며 버티던 건데 드디어 고집을 꺾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타협하고 질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건지 인정해주고 감싸주고 싶었다.


그리고 쿨하게 압수한 휴대폰을 돌려주고, 우리는 다시 사이좋은 모녀 사이로 돌아갔다.




여기서, 이렇게 힘든데 왜 상담을 받지 않지?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학교에서도 권유하고, 내가 보기에도 아이는 상담이 필요하다.

아이를 양육하는 나도, 외할머니도 마찬가지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정신병자냐며 버티는 아이를 설득할 재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사실 그래서 지난번 어렵게 예약한 상담도 취소한 상태이다.

이번에 아이도 상담을 받기로 동의했으니, 바로 다시 상담 준비를 시작할 계획이다.


마침, 학교에서도 도와주신다고 연락이 와 곧 학교 상담부터 받아볼 생각이다.

상담을 통해 아이의 분노의 원인을 찾고, 엄마와 나도 양육방식을 점검하고 전문가로부터 조언도 받아 우리 가족 모두 서로에게 아픔을 주지 않고 잘 지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기록으로 남기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이와 내가 살아가는 걸 브런치에 남기기로 결심했었고 이런 아픔과 시련 또한 우리의 삶의 일부이고, 지금은 그런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앞으로 현명하게 잘 해결하여 점점 행복한 기록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남겨본다.


(연휴가 끝나고 바로 캠핑 일정이 있었는데, 다 취소해버려? 싶었지만.. 아이가 낸 용기로 극적인 관계 회복 후 즐겁게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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